대기업 성장이 불공정행위 결과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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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대기업 성장이 불공정행위 결과여선 안된다 대기업 지정기준 상향 논란…‘갈등과 수탈’ 아닌 ‘협력과 공존’ 돼야

기사입력2016-06-10 12:00

박현진 기자 (kpla12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을 자산총액 10조원으로 상향한 정부방침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기업규모에 따른 양극화, 대기업으로의 돈 쏠림은 여전하고,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행위가 이미 관행화됐음에도 또 다시 대기업의 족쇄를 풀어줬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는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상향 배경에 대해 “현행 5조원 기준이 도입된 후 8년이 경과함에 따라 그간 국민경제 규모 등 경제 여건의 변화를 반영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이후 8년 동안 GDP는 49.4%가 증가한 반면 대기업집단의 자산 평균은 14.7조원에서 36.0조원으로 144.6% 늘었다. 대기업집단 자산 규모가 늘어 지정기준을 상향한다는 논리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풀어보면 국내에서 생산한 ‘돈’의 대부분이 대기업으로 갔으니, 이들 대기업이 이런 저런 규제를 받지 않게 지정기준을 상향하겠다는 것이다.

중기중앙회, “현행 5조원으로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의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상향 발표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사진 오른쪽)는 현행 5조원으로 유지할 것을 촉구한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사진 왼쪽)는 기업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전후맥락조차 어긋난 정부의 지정기준 상향 발표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 논평은 완곡하지만 비교적 정곡을 찌르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지난 9일 논평을 통해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의 본질은 대기업의 경제력집중 억제와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 등 불공정행위 규제를 통해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는데 있다”며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을 자산총액 10조원으로 일괄상향 조정하는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현행 5조원으로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8년 동안 1%의 대기업 곳간에 쌀이 3가마 쌓였고, 같은 기간 99%의 중소기업과 가계 곳간에는 쌀 1가마만 쌓여있다면 ‘공정’하게 나눌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존재이유다. 중기중앙회가 논평을 통해 ‘공정경쟁 환경 조성’ 그리고 ‘균형있는 발전도모’를 언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정기준 상향 이유에 대해 또 정부는 “기업집단 규모와 상관없이 동일 수준의 규제가 일괄 적용돼, 일부 하위 집단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고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6년 대기업집단 1위 삼성의 자산이 348.2조원인 것에 비해 65위 카카오의 자산이 5.1조원으로 68.3배 격차가 난다. 삼성과 카카오를 동일한 잣대로 규제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은 대기업지정제도의 본질을 오도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쌀 1가마밖에 없는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쌀 3가마 또는 그 언저리를 버는 삼성과 카카오를 구분할 이유가 없다. 양자간의 격차가 ‘규제’때문이라면 양자간의 경쟁룰을 조정하면 될 일이다. 애꿎은 중소기업 밥상에 숟가락을 얹을 일이 아니란 얘기다. 중소기업은 이미 자유경쟁이란 이름으로 기울어진 시장에서 쌀 1가마를 얻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대기업집단지정제도의 본래 목적이 체급이 다른 선수를 같은 링에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헌법이 명령한 ‘중소기업 보호육성의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재혁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을 일괄규제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면서 이번에도 10조원 이상 기업을 일괄규제하는 방식을 반복한 건 그냥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팀장의 발언은 이번 정책을 추진하고 결정한 경제관료들의 무사안일함을 질타한 것이다.

“금액별, 산업부문별 특성을 고려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국중소기업학회장인 고려대 박광태 교수(경영학) 역시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지정기준을 10조원으로 정한 근거에 대해 국민 특히 중소기업과 대기업 관계당사자에게 이해를 구해야만 정책의 집행력과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 역시 점잖은 어법지만 경제관료의 탁상행정을 꼬집었다. 박 교수는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산업생태계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일률적인 잣대보다는 금액별, 산업부문별 각각의 특성을 고려한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시행령 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중소기업학회장인 고려대 박광태 교수(경영학)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지정기준을 10조원으로 정한 근거에 대해 국민 특히 중소기업과 대기업 관계당사자에게 이해를 구해야만 정책의 집행력과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삼성과 현대차 그룹 사옥. ©중기이코노미

정부의 지정기준 상향 방침을 발표함에 있어 공정위와 중소기업청이 대표선수로 나선 것 또한 볼썽사납다. 국내 중소기업의 주류가 대기업과 하도급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에서 그나마 중소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릴 줄 알았는데 하는 아쉬움이다.

최근 익히 알려진 ‘중소기업의 어려운 사정’중 하나는 카카오의 ‘골목상권 침해’ 사례다. 정부의 이번 지정기준 상향 방침은 카카오의 거침없었던 걸음을 멈추게 했던 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카카오가 지난해 선보인 ‘카카오택시’는 소비자와 택시기사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음에도 정작 콜택시업체들은 고사상태라고 주장한다. 카카오는 올해 모바일 대리운전호출서비스 ‘카카오드라이버’ 승객용 앱을 출시하고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 하반기 미용실 예약서비스(카카오헤어숍), 가사도우미 중개서비스(카카오홈클린), 주차장 예약서비스(카카오주차) 등 잇단 사업진출을 예고하고 있다. 카카오가 진출했거나 또 진출하려는 관련 업체 종사자들로서는 ‘대기업 밥그릇 키우기’에 발벗고 나선 공정위·중기청의 처사가 달가울리 없다.

소상공인연합회, “대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입을 도와준 격”

소상공인연합회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기업집단 기준을 상향한 것은 현재 논란이 되는 카카오와 하림 등 사실상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입을 방조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도와준 격”이라며 소상공인에 미칠 피해와 영향에 대한 즉각적인 실태점검을 정부에 요구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역시 논평을 통해 “특히 카카오, 하림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택시, 대리운전, 계란유통업 등 골목상권 위주로 진출함에 따라 중소상인들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스타트업 생태계 파괴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중소기업계는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이 아닌 투자확대, 신사업진출, 해외진출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예외적 규제완화는 인정하지만 이는 산업, 업종, 자산규모별 면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상향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전국중견기업연합회는 환영했다. 양단체 모두 이번 지정기준 상향방침에 따라 기업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시장에서 이들의 경쟁력 강화가 중소기업에 대한 지배력 남용에 따른 결과여서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대한민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지금과 같은 갈등과 수탈의 관계가 아닌 협력과 공존의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