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1억원…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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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바나나 1억원…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사다 ‘도발적인 익살꾼’ 마우리치오 카텔란…리움미술관서 7월16일까지

기사입력2023-02-19 00:00

김현성 기자 (kimh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전시장 벽에 노란색 바나나를 은색 테이프로 붙여놓고 미술작품이라고 한다면? 그런데 그걸 누가 먹어버렸다면?

‘코미디언’,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김경태>

이런 황당하기 그지없는 작품을 설치한 작가가 바로 마우리치오 카텔란이다. 카텔란은 2019년 마이애미 아트바젤에서 ‘코미디언(Comedian)’이라는 제목의 바나나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심지어 전시장을 지나던 배가 고팠을 수도 있는 한 아티스트가 그 바나나를 떼서 먹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장면은 관람객에 의해 촬영돼 인스타그램을 통해 퍼져나가며 온갖 패러디와 합성사진들을 쏟아냈다. 이 일은 아트바젤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해프닝이 일어났지만 갤러리 담당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른 노란색 바나나를 그 자리에 테이프로 붙이고 전시를 이어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총 3개의 에디션 중 두 개의 작품이 12만 달러(한화 약 1억4000만원)에 판매됐고, 심지어 전시 마지막 날에는 작품가격이 더 올라 세 번째 에디션 작품은 15만 달러라는 판매가를 기록했다.

그나저나 도대체 누가 곧 검게 썩어서 녹아내릴 바나나를 1억원이 넘는 거액을 주고 산 걸까.

답은 바로 개념미술에 있다. 현대미술에서 작품이라는 것은 ‘만든 것’뿐만이 아니라 작가가 ‘생각해낸 것’까지라고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미술의 출발은 마르셀 뒤샹이다. 시장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전시장에 그대로 갖다놓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뒤샹은 생각이 곧 예술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카텔란은 ‘코미디언’이라는 바나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어떤 것을 가치있다고 느끼는지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작품을 구매한 사람들 또한 바나나 자체를 1억원에 샀다기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즐겨 작업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카텔란은 정규미술교육을 받지 않았고,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미술계에 입문한다. 변곡점이 많았던 그의 인생처럼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계의 관습과 제도에 도전하는 작업을 선보여 마르셀 뒤샹의 후계자로 평가받는다.

‘무제’,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신발_가변크기_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사진=김경태>

예술의 본질에 대한 끊이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카텔란의 전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WE’.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초기작부터 대표작인 ‘코미디언’, ‘모두’, ‘우리’ 등과 같은 조각, 설치, 벽화 작품이 총 38점 전시된다. 전시는 7월16일까지다. 중기이코노미 김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