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오래 사는 것보다 행복한 삶을 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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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그저 오래 사는 것보다 행복한 삶을 누려야 부와 명예에 집착해 오히려 피폐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기사입력2022-06-28 10:06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특정한 나이대를 일컬어서 말할 때 70세를 고희(古稀)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예로부터[古來] 드물다[稀]’라는 뜻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이것은 당대(唐代)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태어나 일흔을 사는 것이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来稀)”라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곡강이라는 시는 안사(安史)의 난이 한창 이어지던 758년에, 당시 장안(長安)의 유명한 휴양지인 곡강지(曲江池)에서 스러져가는 당나라의 국운에 비통해하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기 전 5200만명이었던 인구가 763년 안사의 난이 끝난 다음 해 조사에서 인구가 4600만명으로 줄었을 만큼 많은 사람이 죽이고 죽는 처참했던 시기를 직접 겪었던 두보는, 사람이 70세를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서 예로부터 70세를 산 이가 드물다고 말한 듯하다.

712년에 태어난 두보는 47세에 이 시를 지었고, 12년이 지난 770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니, 안사의 난이라는 참혹한 시절에도 두보는 비교적 오래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70세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고희(古稀)의 ‘드물다(稀)’를 ‘바라다(希)’로 바꾸어서 ‘고희(古希)’라고도 부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국 역사에서 오래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편에 팽조(彭祖)라는 이가 하(夏, B.C.2070~B.C.1600) 왕조로부터 상(商, B.C.1600~B.C.1046) 왕조에 걸쳐 약 800년을 살았다고 하고, 이후에도 팽조가 장수했다는 이야기가 여러 책에서 인용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보가 “사람이 태어나 일흔을 사는 이가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라고 읊었던 장안(長安), 즉 지금의 서안(西安) 시내에 있는 유흥지 곡강지(曲江池)의 전경이다. <사진=문승용 박사>

오래 살기를 간절히 바랐던 인물로는 진시황제(秦始皇帝)를 들 수 있다. 그는 고대 중국에서 처음으로 통일왕조 국가를 세우고 세상을 모두 가졌다고 자부해, 자신의 칭호를 황제(皇帝)라고 했다. 황제에서 황(皇)은 본디 ‘불타오르다’, ‘위대하다’라는 뜻이고, 제(帝)는 숭배의 대상인 하늘의 신이라는 뜻에서 상제(上帝)나 천제(天帝)라고도 한다.

이처럼 진시황제는 위대한 하늘의 신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해 늙지 않는 불로초(不老草)와 죽지 않는 불사약(不死藥)을 마구 먹어댔지만, B.C.259년에 태어나 B.C.210년에 죽어서 딱 50세도 채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해야만 했으니 그 역시 당시의 평균수명보다 약간 넘는 정도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왕의 평균수명이 46세였다. 국왕이라면 당시 최고수준의 의술에다가 가장 맛나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늘 섭취하였을 터인데도 나이 쉰을 채우지 못하였으니, 오늘날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이 84세인 것에 비교해 보자면 왕들이 어찌 그 나이밖에 살지 못했는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60세인 환갑(還甲)만 되어도 오래 사는 것이라고 해 일가친척과 친구들이 모여 축하해 주는 잔치를 벌이는 일이 흔했는데, 지금은 70세를 축하하는 자리인 고희연(古稀宴)조차도 집안 식구끼리 조촐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오늘날에는 예로부터 드문 나이인 70세를 훌쩍 넘긴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이 80세를 훌쩍 넘기다 보니, 주변에서 90세가 넘은 어르신을 흔히 본다. 그런데 오늘날 이처럼 사람이 오래 살게 된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이기만 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두보초당(杜甫草堂)에 있는 두보의 흉상이다. 두보의 시에는 안사의 난 당시 처참한 사회 현실과 그 때문에 고통을 겪는 백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사진=문승용 박사>

요즘에는 50세가 되면 대부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만 하는가 하면, 정년이 보장돼 있다고 할 수 있는 공무원의 경우도 대개는 60세 즈음에는 퇴직하게 되어 있으니, 이후 평균수명을 다 채울 때까지 20~30년 이상 하는 일 없이 건강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곤궁하게 더 살아야 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어찌 보면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송해 선생이 1927년에 태어나 만 95세의 나이였다는 점 이외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방송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며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흔히 말하는 인간 행복의 조건을 다 누리고 돌아가신 것이 아닌가 싶다.

중국 고대 도가(道家) 사상가 가운데 열자(列子)라는 이가 90세를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열자의 책 천서(天瑞)편에는 그가 살아오면서 여러 즐거움을 누렸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인생의 3가지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늘이 만물을 낳았는데, 오로지 가장 귀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당시 남녀 간에 차별이 있는 사회에서 존귀한 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고, 태어났다가 해와 달도 보지 못하고 포대기에 싸인 채로 죽는 경우도 많은데, 자신은 이미 살아온 햇수가 90이나 됐으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했다.

이처럼 열자가 90세까지 장수한 것이 인생에 있어서 기쁨의 하나로 꼽았지만, 그는 또 “사람들이 모두 삶의 즐거움만 알지만, 삶의 고통은 모른다. 늙음의 고달픔만을 알지만 늙음의 편안함을 모른다. 죽음이 나쁘다는 것만을 알지만, 죽음이 휴식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人胥知生之樂, 未知生之苦. 知老之憊, 未知老之佚. 知死之惡, 未知死之息也)”라고 했다. 열자는 삶이 기쁜 것이라 하면서도 죽음 역시 사람의 휴식처가 될 수 있으니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 말은 마치 열자가 죽음을 권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예나 지금에나 사람들이 출세해 명예를 얻거나 부자가 되기 위해서 현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연 만물이 늘 생성하고 변화하다가 죽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믿었기 때문에 역시 자연 만물의 일부분인 인간의 죽음 역시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열자의 이 말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부와 명예만을 추구하느라 오히려 피폐한 삶을 살고 있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싶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