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교묘하게 말 꾸미지말고 진심 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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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정치인, 교묘하게 말 꾸미지말고 진심 담아라 공자는 자리얻기 위해 신념 굽혀 곡학아세(曲學阿世) 하지 않았다

기사입력2022-09-01 09:57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첫 회에서 우영우가, 로펌에 취직하고 처음으로 변론을 맡아 법정에 서서 자신에게는 자폐증이 있기 때문에 “말이 어눌하지만, 법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법정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본디 변호사는 피고를 대신해서 유창하게 변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법정은 물론 오늘날 우리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며 유창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 이른바 출세의 길에도 들어설 수 있다.

말을 유창하게 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을 수사학(修辭學)이라고 한다. 수사(修辭)란 말을 수식(修飾)한다는 뜻이지만, 수사학의 영어 단어 레토릭(rhetoric)은 ‘대중 연설의 기술’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가 라틴어(rhetorica)와 프랑스어(rhetorique)를 거쳐 영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수사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정치 연설이나 법정에서 청중을 잘 설득하기 위한 말하기 기술 즉, 일종의 ‘웅변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말에서도 말을 막힘없이 썩 잘하는 것을 두고 마치 푸른 산에 흐르는 맑은 물이라는 뜻의 청산유수(靑山流水)와 같다고 하는 것처럼, 서양의 수사학은 정치 연설이나 강연에서 말을 마치 봇물 떠지듯이 거침없이 쏟아내야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정도직행(正道直行), 학문을 닦는 선비나 관직에 나아간 관리들이 지켜야 할 도리로서 “바른 길로 곧게 나아가야 한다”라는 뜻이다. <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그런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여러모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는 공자는 이른바 말 잘하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공자가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교묘하게 꾸며진 말과 예쁘게 가꾼 얼굴은 어짐이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나 얼굴색을 이리저리 꾸미는 것에는 그만큼 진실성이 없다고 했다. 역시 같은 편에서 “말이란 그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될 뿐이다(辭達而已矣)”라고 해, 말을 꾸미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자신의 생각을 말로 드러내고 글로 써서 표현할 수 있어서 오늘날과 같은 인간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고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흔히 있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의도했던 말이 잘못 전해져서 상대방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실제로 유가의 주요 경전 가운데 하나인 주역(周易)에서 “글은 말을 다 나타내지 못하고, 말은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없다(書不盡言, 言不盡意)”라고 해, 공자의 유가에서는 말과 글이라는 것이 사람의 생각을 온전하게 다 드러낼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 공자는 이인(里仁)편에서 “군자는 말을 어눌하게 하고자 한다(君子欲訥於言)”라고 해, 공자는 평소 말을 서툰 듯이 해야 하는 것이 마치 군자의 덕목인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물론 본디 말이란 것이 말하는 이의 생각을 온전하게 전할 수 없는 것인데, 당시 세상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해놓고는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말하기를 늘 조심스럽게 하되 이미 말한 것은 민첩하게 실천할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공자가 말을 번지르르하게 꾸미거나 행동보다 말을 앞세우는 것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자가 살았던 춘추(春秋)라는 어지러운 시기에 유세객들이 말만 앞세우던 시대적인 분위기를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자의 시대는 주(周)나라 건국 초기 실시하였던 봉건제(封建制)가 무너지면서, 수많은 지방 제후국들이 어지럽게 갈려서 쟁패를 다투던 때였다. 이때 많은 유세객들은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정치사상을 각 제후국의 군주들에게 유세하는 과정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일단 군주의 마음을 사서 관직을 꿰차려는 이들이 많았다.

중국에서는 대대로 당시 최고의 지식인들이 과거시험을 통해 높은 관직에 올라 황제 앞에 나서서 정치적으로 최고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나라 발전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곡학아세(曲學阿世)해,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고 할 수 있다. <사진제공=문승용 박사>

공자는 쉰 살이 넘어서야 작은 제후국이었던 노(魯)나라에서 얻은 대사구(大司寇)의 직위를 내던지고, 십수 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다니며 ‘사랑[仁]과 정의[義]’를 실천해야 한다고 제후국 군주들에게 유세했지만, 아무도 공자의 정치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일흔 살이 다 되어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짓다가 생을 마쳐야 했다.

당시 다른 제후국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의 정책이 간절했던 군주들에게 공자의 정치사상이 너무 이상적이었기 때문에 공자가 높은 자리에 등용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공자가 군주에게 인정을 받아 재상과 같은 큰 자리 하나를 차지해야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낮은 관직이나마 내려줄 수 있고, 또 공자의 가족들에게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시 다른 유세객들처럼 공자 역시 군주의 비위에 맞추어 살짝 좀 더 말을 잘 꾸며서 군주에게 유세했더라면 혹시라도 높은 관직을 얻어 권력을 누릴 수 있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끝내 공자는 자리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정치 신념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를 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정치인을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부류로 꼽는데, 그것은 아마도 공자가 위령공(衛靈公)편에서 “교묘하게 꾸민 말은 덕을 어지럽힌다(巧言亂德)”라고도 말하였듯이, 정치인들이 늘 말을 현란하게 수식해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어지럽혀 혼란에 빠뜨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치인 가운데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나름의 정치 이상을 펴보고자 하는 큰 뜻을 가지고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인 역시 먹고살아야 하는 직업인으로서 정치 권력을 얻기 위해서 혹은 이미 얻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핑계와 변명의 말들로 자신의 정치 생명을 구차하게 이어왔는지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한국외대 중국연구소 문승용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