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익 피하려 산재 은폐하는데 ‘처벌만’ 회의적

프린트

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불이익 피하려 산재 은폐하는데 ‘처벌만’ 회의적 근로자 감시제도, 개별실적요율제 재검토 제시…산재피해자 대책은

기사입력2016-07-19 13:00

정원석 객원 기자 (delphi2000@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노무법인 ‘원’ 정원석 노무사

최근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자 사망사건(5.28),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 가스폭발사건(6.1) 등 중대 산업재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산업재해보상시스템의 문제점들이 다시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이를 계기로 하청 근로자 등 산업재해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제도개선에 나서는 모양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중순 ▲고의로 산재를 은폐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 징역) 규정을 신설(안 제10조 제3항 및 제68조제4호)하고, ▲다수 수급인의 근로자가 혼재해 작업함으로써 발생하는 안전보건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안전보건조정자 제도를 신설(안 제 18조의2)하며, ▲도급인의 수급인에 대한 정보제공 범위를 확대(안 제29조 제5항)하는 내용 등을 신설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고용노동부 공고 제2016-208호)했다. 개정안은 이달 27일까지의 입법예고 기간과 국무회의 등을 거쳐 국회에 제출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이러한 노력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소 회의적이다. 산업재해보상시스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산재발생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사업주가 사고 발생을 은폐한다는 점인데, 처벌을 어느 정도 강화한다거나 직책을 신설하는 등의 방식으로는 변죽만 울릴 뿐,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한 것은 오히려 산재 은폐를 부추길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무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산재은폐율이 높은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①대규모 정부발주 건설사업에 대한 입찰참가 자격 제한 ②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③산재보험료율 할증이 그것이다.

정부가 발주하는 대형공사(공사예정금액 100억원 이상)에 참여하려는 기업은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re-Qualification, 흔히 PQ 심사라고 함)’에 통과해야만 한다. 이 제도는 정부발주 공사에서의 부실시공을 막기 위해 도입했다. 기술능력, 시공경험, 경영상태와 신인도 등을 종합평가해 기준을 충족한 업체만을 대상으로 낙찰자를 선정한다. 특히 교량, 철도, 지하철, 공항, 항만 등의 주요 정부발주 공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는 PQ심사에 반드시 통과해야한다. 이 PQ심사 기준에는 산업재해 발생률도 포함돼 있다. 사업주로서는 산재은폐에 대한 행정적·형사적 리스크를 감내하고라도 공사를 우선 따내는 것이 이득이라는 유혹에 사로잡히게 되는 구조다.

중대 산업재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산업재해보상시스템의 문제점들이 다시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 도어에 시민들이 붙인 추모의 글. 지난 5월28일 구의역 승강장에서 작업 중이던 용역업체 직원 김모(19)씨가 작업중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사진=뉴시스>

또 산재가 발생하면 해당 사업장에 대한 근로감독과 산업안전보건감독이 이뤄지는데, 이로 인해 적발사항이 발견되면 시정조치기간 없이 바로 과태료나 벌금이 부과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는 다른 법에 의한 과태료보다 규모면에서도 크기 때문에, 사업장은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감독에 대비하기위한 준비기간이 필요한 경우에는 공사기간 증가에 따른 각종 리스크도 걸머져야 한다.

산재보험료 산정 기준에 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나라는 산재사건이 많은 사업장에 더 높은 보험료율을 부과하는 ‘개별실적요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개별실적요율제도는 기본적으로 산재발생률과 보험료 부담을 연계시켜 산재예방효과를 높이기 위한 제도다. 재해율 차이에 대한 보험료 부담의 불합리를 시정하고 사업주에게 산재예방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즉 산재보험도 ‘사회적 위험의 연대적 부담’이라는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보험의 일종으로, 건강보험과 같이 위험부담을 평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해 “개별실적요율제가 산재예방에 미치는 효과와 산재은폐의 원인이 되는지 여부 등에 대해 노사의 견해가 대립하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용역(올해 5~10월)을 진행중이며 이를 토대로 전반적인 개선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집에서 다쳤다’고 말해야하는 하청업체 근로자들

원청업체의 의중에 따라 사업의 명운이 결정되는 하청업체에 소속한 근로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하청업체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업체에서는 페널티를 부여하고, 이것이 반복되면 계약을 끊는 것이다. 따라서 하청업체측에서는 산재의 발생과 은폐에 더욱 예민할 수 밖에 없고, 이는 하청 산재 근로자의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의사를 만나서도 ‘집에서 다쳤다’고 말해야하는 상황이다.

노무법인 소망의 송해도 노무사는 이에 대해 “초진 시 집에서 다쳤다고 언급해 이것이 의료기록으로 남을 경우, 추후 상황이 바뀌어 근로자가 산재신청을 할 때 어려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면서 “건강보험공단에 대한 보험급여 부정수급의 책임까지 떠안을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재처리를 받았던 근로자들의 재취업을 방해하기 위한 명단, 이른바 ‘산재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이에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의 노동자평의회 제도와 같이 근로자들의 참여와 감시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산재 발생률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견해 ▲공사 낙찰금액을 현실화해 산재예방 여력을 보장하고, 대신 적극적인 예방행위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처벌을 강화하자는 방안 ▲사회보험의 보편적 원리에 따라 개별실적요율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자는 견해 ▲근로자가 회사의 확인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급여를 청구하는 현행 절차를 수정해 담당의사가 판정하고 신고와 급여청구를 하도록 하자는 방안 등이다. 이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해답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정책목표를 ‘재해율 수치 낮추기’에서 산재 피해사례를 능동적으로 발굴해 적극적으로 보상하는 쪽으로 바꾸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