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매춘의 도시 그리고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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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지옥과 매춘의 도시 그리고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 파리의 삶을 그리는 도시 산책자…귀스타브 카유보트㊤

기사입력2021-11-10 10:29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귀스타브 카유보트와 파리㊤]프랑스 파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낭만과 아름다움이다. 파리의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 노트르담 대성당 등만 머릿속에 그려봐도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1800년대 중반의 파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다. 프랑스의 위대한 소설가 발자크(Balzac)는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이란 소설에서 파리를 지옥과 매춘의 도시로 그릴 정도였다. 그 당시 파리는 도시화와 공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인구가 급증해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위생과 삶의 편의는 최악이었다. 상·하수도망이 없어서 오물 섞인 물이 식수로 사용되었고, 그로 인해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비 오는 날이면 빗물과 오물이 뒤섞여 도시 전체가 악취로 가득 찼다.

그런데 1877년 그려진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Paris Street, Rainy Day)’는 비 오는 날의 파리를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가 그린 이 그림에는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발자크가 지옥과 매춘의 도시로 봤던 파리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비 오는 날 파리를 이렇게 아름답게 그린 카유보트는 누구일까?

◇비 오는 날의 파리를 그리다=귀스타브 카유보트가 그린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는 1800년대 중반에 시작한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새롭게 탄생한 파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 1877, 캔버스에 유채, 212.2×276.2cm, 시카고 미술관.

반복된 혁명과 전쟁, 혼란, 그리고 도시화와 공업화는 파리를 발자크의 묘사처럼 지옥으로 만들었다.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 3세는 파리의 재정비를 구상했고, 1953년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 Eugene Haussmann)을 파리 시장으로 임명해 파리 시가지 개선을 그에게 맡겼다.

오스만은 기차역과 주요 광장을 연결하는 50개의 대로를 만들고, 도심에 대형 숲과 28개의 중소 녹지를 조성했다. 역사적인 건축물을 개보수했을 뿐만 아니라, 공공건물과 공연장 등과 같은 문화공간도 신축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하수도망을 대폭 개선한 것이다. 악취로 가득하고 전염병이 들끊던 도시는 놀라울 만큼 변했다.

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카유보트의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다. 파리 재정비 사업 이전만 해도 그림처럼 비 오는 날 멋스럽게 차려입고 파리를 돌아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카유보트의 이 작품은 파리 북쪽에 있는 생라자르 역 근처 더블린 광장의 비 오는 날 풍경이다. 그림의 전체는 파스텔 색조로 포근하고 안정된 정서를 느끼게 한다. 신사와 숙녀가 팔짱을 끼고 함께 우산을 쓰고 걷는 모습은 파리의 낭만과 도시인의 세련미가 느껴진다. 우산을 쓰고 넓은 광장을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파리의 활력이 엿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1877년 제3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전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인상주의 미술이라고 하면,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이 대표 작가로, 순간의 느낌, 즉 ‘인상’을 포착해 빠르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대부분 그림이 굉장히 거칠다. 더불어 선원근법이나 균형 잡힌 구도, 입체감 등을 거부함으로써 사실적이고 섬세한 재현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자화상’, 1892년경, 캔버스에 유채, 40.5×32.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런데 카유보트의 이 그림은 무척 섬세하고, 왼쪽 뒤편의 건물이나 보도블록의 모습 등에서 선원근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가운데 가느다란 초록색 가로등이 화면 좌우를 나누는 것이나 건물과 인물들이 계산된 것처럼 배치된 모습은 일반적인 인상주의 작품들과 사뭇 다르다.

사실 카유보트는 1950년대 미술사가들에 의해 재조명되기 전까지 화가로서의 명성보다는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한 동료 화가들에게 큰 도움을 준 예술 애호가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팔리지 않는 작품을 구매해주면서 동료 화가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줬고, 수집한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조건으로 프랑스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남긴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받아 재정적으로 풍족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마셜 카유보트(Martial Caillebotte)는 군복 납품업체를 운영하면서 동시에 상업법원의 판사이기도 했다. 카유보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률을 공부해 법학 학위를 취득하고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했다.

그런데 징집되어 참전했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돌아온 1871년 이후 법조인의 삶을 포기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해, 사실주의 화가 레옹 보나(Léon Bonnet)에게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1873년에는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 입학도 했다. 하지만 에콜 데 보자르에서는 오래 있지 못했다. 이듬해인 1874년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유산을 상속받아 큰 부호가 됐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놓지 않았다. 다른 화가들과 교류하며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발표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