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에도 “경제 기지개 켜” 자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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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환율 1400원에도 “경제 기지개 켜” 자랑하나 불확실성 높아진 급변기, 시장에 잘못된 신호는 큰 일

기사입력2024-11-09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이제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던 2022년에는 “거시지표를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혹독한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이었지만, 최근 경제 상황은 나아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은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는 취지인데, 대통령의 낙관적인 인식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여전히 가계경제가 압박을 받고 있고, 민간소비 회복이 지연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여전히 고전 중인데, 어찌 이런 천하태평한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경제상황이 평탄하게 회복 중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최근의 거시경제 상황은 급변동 중이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대통령의 담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얘기지만,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80원대를 지나,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한때 1400원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환율이 치솟은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방향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미국의 국채발행량이 늘어나고 채권금리가 인상될 수 있다. 게다가 높은 관세정책으로 물가마저 들썩일 것이란 우려가 있다. 전체적인 상황이 강한 달러와 고환율을 가리키자, 가뜩이나 불안했던 환율이 빠른 속도로 치솟은 것이다.

물가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준이 정책금리 방향을 급선회하지 않은 점은 다행이다. 지난밤 열린 FOMC에서 미 연준은 정책금리를 0.25%p 낮췄다. 시장의 예상과 같이 9월에 이어 두 차례 연속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1400원대를 돌파한 환율의 상승세가 주춤할 수 있지만, 앞으로의 방향성은 확신하기 어렵다.

급등한 환율이 걱정거리인 이유가 있다. 한국의 물가를 다시 자극할 가능성도 걱정이고, 원자재·중간재를 수입해 다시 수출하는 국내 제조업계의 채산성도 문제다. 무역협회 등의 연구를 보면, 고환율이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에 도움을 주는 정도보다,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환율을 직접 조작하는 것은 안될 일이나, 과도한 변동 폭이나 단기간에 빠른 변동 속도가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좌시하기 힘들다.

미국 대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환율뿐만이 아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보편관세와 함께 무역수지 적자의 해소 등을 공언해왔다.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대표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이 영향을 받을지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밖에 칩스법과 IRA법 등에 대한 트럼프 당선인의 부정적인 견해도 반도체와 2차전지 업계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면 폐지 수준이 아니더라도 축소 등으로 우리 기업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이 커졌다.

위중한 상황을 정부도 인식하고는 있을 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난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강조해 온 정책기조가 현실화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선제적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대신 낙관적인 자화자찬만 늘어놓아서는, 시장에 제대로된 신호가 갈 리 만무하다. 외교협상도 필요하고, 기업지원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신호가 시급하다. 외부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 정부마저 시장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의 수가 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