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가능성의 보고인가 문제투성이 연결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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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인터넷, 가능성의 보고인가 문제투성이 연결망인가 평등한 것 같던 상호작용에 스민 권력구조…넷 아트, 길들여진 반란

기사입력2025-04-09 07:33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열광과 의심을 함께 부른다. 세상을 바꾸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열광, 그렇게 바뀐 세상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으리라는 의심 같은 것을 말이다.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예술은 이러한 열광과 의심 사이에서 틈새를 찾고, 기술의 용도를 변경하고자 한다. 인터넷을 예술의 장치이자 장소로 사용하고자 했던 작가들 또한 그렇게 틈새를 찾고자 했다.

이른바 ‘인터넷 아트’를 대표하는 사례로, 1990년대에 2000년대에 걸쳐 활동한 ‘넷.아트(net.art)’ 작가들이 있다. 알렉세이 슐긴(Alexei Shulgin)과 나탈리 북친(Natalie Bookchin)이 함께 쓴 ‘넷.아트에 대한 소개(Introduction to net.art)’는 이들의 목표와 지향을 잘 축약해 보여준다. 이 짧은 선언문에서, 그들은 ‘넷.아트’를 통해 저자의 ‘실질적인 죽음’이 가능해질 것이며, 보수화된 예술 기관과 제도를 피해 새로운 장소를 만들고, 이내 미술관을 철폐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당시 인터넷은 낯설고 전문적인 테크놀로지였다. 인터넷에는 제도가 없었으며, 인터넷 아트를 거래해 줄 시장도 없었다. ‘넷.아트’ 작가들은 이와 같은 부재가 곧 전위적 작업의 배경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터넷 아트에 관여한 작가들이 자신의 정신적 기원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다다이즘으로부터 찾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 아트에는 기존의 예술 제도와 권력에 포섭되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가 있었고, 그건 분명 반예술적인 것이었다. 이론가 새디 플랜트(Sadie Plant)는 인터넷이 중앙집권적인 기존의 미디어와 달리 탈중앙집권화된 네트워크에 기반하며, 이러한 속성이 곧 여성적인 것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인터넷을 페미니즘적인 장소로 상상하고자 했다. 이처럼 인터넷은 ‘자유로운’ 장소였으며, 반란과 급진이 나타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점차 일상화되었고, 급진적 상상력은 매일 같이 이동하는 트래픽 속에서 점차 닳아갔다.

‘WEB-RETRO’(2019) 전시 전경. <제공=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9년 북서울미술관에서 기획한 ‘WEB-RETRO(웹-레트로)’는 1989년에 상용화된 월드 와이드 웹(WWW)의 30주년을 맞이해, 인터넷과 그것에 기반을 둔 다양한 작업의 사례를 돌아보는 전시였다. 여기서 2019년이라는 숫자는 중요하다. 전시는 인터넷이 막 떠오르고 부상하던 시기, 그것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이 터져 나오던 시기가 아닌, 가능성이 오히려 다 사그라들고 잔해만이 남은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열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시는 자못 ‘레트로’하게 연출되었다. 구식 CRT 모니터와 같이 과거 20~30년 전의 기술문화 풍경을 상기시키는 하드웨어가 놓였고, 인터넷 인터페이스 역시 과거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설치에 누군가는 노스탤지어를 느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낯섦을 느꼈을 것이다. 관객은 이 익숙하거나 낯선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도 있었다. 상호작용은 인터넷 아트가 꾸준히 지향해 온 예술 문법이기도 했다. 생산자와 수용자 사이에 놓인 경계를 넘어, 관객이 직접 예술에 변화를 만들고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 예술계의 경계를 넘어 그 바깥에서 작동하는 예술을 기획하는 것, 인터넷 아트는 그러한 문법을 늘 지향했다.

다만 전시된 작업 중에는 상호작용의 맹점을 지적하는 작품 또한 있었다. 양아치의 ‘전자 정부’가 그러했다. 인터넷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정보의 유출로부터 착안한 이 작업은, 관객이 웹페이지의 빈칸을 직접 채워 넣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빈칸은 이름, 성별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요구하다가, 이내 자신과 부모의 1년 수입,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내밀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이는 ‘빈칸을 채워 넣는다’는 일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개인의 정보를 탈취하는 미디어 권력을 가시화하는 한편, 평등한 것처럼 보였던 상호작용에 스민 권력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WEB-RETRO’는 전시와 아카이브로 나뉘었다. 아카이브는 WWW가 상용화된 이래 약 30년 간의 주요 역사를 망라하며, 인터넷과 인터넷을 사용하는 예술의 역사를 새삼 돌이켜보게 만들었다. 인터넷의 역사를 회고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기록이 얼마나 자주 휘발되는가를 상기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다. 인터넷은 비물질적이고 비장소적이기에, 기록은 영원히 보존될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서 기록은 오히려 쉽게 사라져 버린다. 예컨대 전시된 작품 중에는 어도비의 소프트웨어인 플래시를 사용해 만들어진 작업이 있었는데, 2020년에 들어와 플래시는 공식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했고, 이 작업은 소실되는 처지에 놓였다.

‘WEB-RETRO’는 인터넷의 가능성이 만발하던 그때의 감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이끄는 기회였다. 전시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현재, 인터넷은 가능성의 보고가 아니라 문제투성이 연결망으로 더욱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테크노봉건주의’라고 불리는 거대 기업의 미시 통제가 일상화되었고, 미래를 약속하는 줄 알았던 인터넷은 과거의 정보를 생생하게 복간하면서 과거로의 복고를 주선했다. 인터넷과 인터넷 아트의 역사를 쓰는 일이, 과거 그것이 포함했던 반예술적 가능성과 급진적 가능성을 복구하는 일이 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전시라는 매체의 힘을 넘어서는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