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근로기간 위반, 해외파견 비용 반환약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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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의무근로기간 위반, 해외파견 비용 반환약정은 해외파견의 실질이 근로의 제공일 경우 비용의 반환약정은 위법

기사입력2025-06-12 13:00

이동철 객원 기자 (leeseyha@inochong.org) ㅣ다른기사보기

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노동현장에서는 의무재직기간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임금의 일부를 반환하거나 위약금을 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용역서비스 업종이나, 높은 자격요건 혹은 기술력에 따라 고임금과 사이닝 보너스를 지급해가며 사람을 모셔 와야 하는 기술전문직에서 이런 계약형태가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근로기준에 따르면, 이러한 계약은 위법의 소지가 크다. 근로기준법 제20조에 따라 사용자는 근로계약의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액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위탁교육이나 해외연수 등에 따라 회사가 노동자에게 비용을 대신 지급할 경우 의무재직기간을 설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교육이나 연수비용을 반환하도록 정한 약정은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현장에서는 해외연수나 위탁교육을 명목으로 실질적으로 그 내용이 근로제공일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교육이나 연수의 명목으로 지급된 비용은 실질적으로는 근로에 대한 대가인 임금에 해당한다. 임금의 반환을 약정한 부분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근로의 대가로 지급한 임금을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반환하기로 하는 약정으로, 실질적으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을 예정하는 계약에 해당, 근로기준법 제20조에 위반돼 무효다.

최근 대법원은 의무근로기간 위반을 이유로 해외 파견근무 비용을 반환하기로 정한 약정은 근로기준법 제20조에 위반돼 무효라는 판결(대법 2022다208755, 선고 2025.4.15.)을 내놨다.

◇사건의 경위=반소원고(이하 회사)는 원자력안전법 제6조에 따라 원자력통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법인이다. 회사는 공모절차를 거쳐 반소피고(이하 노동자)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파견기관 비용부담 전문가(Cost Free Expert, 이하 ‘CFE’)로 파견했다. 회사는 IAEA에 예산 지원을 위해 유럽연합 통화 30만4000유로를 기여금으로 지급했다.

회사의 규정(국제원자력기구 파견전문가에 대한 고용휴직 관리요령)은 ‘CFE가 (회사에) 파견기간의 2배에 해당하는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회사가 국제원자력기구에 지불한 비용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노동자는 회사와 위 규정과 같은 내용의 반환약정을 작성했다.

노동자는 2016년 8월3일부터 2019년 6월30일까지 회사에 대한 고용휴직 상태에서 IAEA의 CFE로 근무하다가 2019년 7월3일 회사에 사직의 의사표시를 했다. 이에 회사는 노동자를 상대로 반환약정에 따라 회사가 IAEA에 지급한 비용의 반환을 요구했다.

◇사안의 쟁점=이번 사건의 쟁점은 파견기간 2배에 해당하는 의무복무 미이행시 노동자가 회사가 IAEA에 지불한 기여금을 반환하기로 한 약정이 근로기준법 제20조가 금지한 근로계약 불이행에 따른 위약금 내지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해당하는가 여부다.

◇관련 법리=앞서 대법원은 의무재직기간 근무 불이행시 연수기간 중 지급받은 정상급여 반환약정이 사용자가 근로계약의 불이행에 대해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을 예정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24조(현행 20조)에 위반돼 무효라고 판결(대법 95다 52222)한 바 있다.

최근 대법원은 의무근로기간 위반을 이유로 해외 파견근무 비용을 반환하기로 정한 약정은 근로기준법 제20조에 위반돼 무효라는 판결을 내놨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다만 예외적으로 기업체에서 비용을 부담 지출해 직원에 대해 위탁교육을 시키고 이를 이수한 직원이 교육 수료일자로부터 일정한 의무재직기간 이상 근무하지 아니할 때에는 “기업체가 우선 부담한 해당 교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상환하도록 하되 위 의무재직기간 동안 근무하는 경우에는 이를 면제하기로 하는 약정은 근로기준법 제24조(현행 20조)에서 금지된 위약금 또는 손해배상의 약정은 아니다”라고 설시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외관상 연수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 실질이 회사의 명령에 따른 근로제공이라면 의무재직기간 위반을 이유로 경비를 반환하기로 한 약정이 근로기준법 제20조 위반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2004년의 대법원 판례(대법원 선고 2001다53875, 2004.4.28)를 법리로 제시했다.

해당 판례는 “근로자의 해외 파견근무의 주된 실질이, 연수나 위탁교육훈련이 아니라 사용자의 업무상 명령 내지 필요에 따라 근로자가 근로장소를 변경하여 근로를 제공한 것이거나 보인다면, 그러한 해외근무기간 동안 임금 이외에 지급된 금품이나 들인 비용도 장기간 해외근무라는 특수한 근로에 대한 대가이거나 업무수행에 있어 필요불가결하게 지출할 것이 예정되어 있는 경비에 해당한다”라며, “의무근로기간 위반을 사유로 지급된 금품이나 들인 비용을 반환하기로 하는 약정 역시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의 판단=대법원 재판부는 2004년의 대법원 판례를 법리로 제시하며, 이 사건 반환약정이 근로기준법 제20조에 위배되어 무효라는 원심[대전고등법원 선고 2021나12115(반소) 2021.12.23.] 결론을 긍정했다.

해당 노동자는 IAEA에서 핵안전관리관으로 핵물질 및 핵시설에 대한 물리적 방호지침의 이행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를 제공했는데, 재판부는 “업무 수행에 비추어 노동자가 IAEA파견 근무기간 중 전문가로서 역량과 지식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들어 회사의 주장처럼 IAEA에서 노동자가 연수나 교육훈련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파견기간 중 노동자의 활동을 근로제공이라는 취지로 해석했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월별·분기별 보고, 수시 자료제출 의무 등을 부과하고 노동자는 이를 이행하는 등 회사의 필요에 따라 원자력 통제에 관한 국제협력 지원업무 수행을 위해 IAEA에 파견돼 회사의 관리 아래 근로를 제공했던 점과 노동자가 지급받은 보수와 체제비 등은 해외근무에 대한 대가 등으로 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는 점을 들어, 재판부는 “노동자가 지급받은 보수와 체제비 등은 해외근무에 대한 대가 등으로 회사가 부담하여야 할 비용이고, 원래 노동자가 부담하여야 할 비용을 회사가 일단 우선적으로 부담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의 의의=자유시장경제는 계약의 자유를 핵심가치로 삼는다. 그래서 민법상 계약에서 당사자는 계약의 내용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법에서는 예외적으로 이러한 계약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률 조항이 많다. 근로기준법 제20조가 대표적이다.

민법 제398조는 사적자치에 의해 당사자 사이의 채무불이행에 대해 손해배상액 또는 위약금 예정을 인정하고 있다. 이를 근로계약에도 적용하면 노동자가 직장을 얻기 위해 불리한 계약을 감수하고 퇴직의 자유가 제한되는 등 헌법상 금지된 강제근로가 현실화되고 직업선택의 자유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0조가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해 노동자에게 위약금이나 손해배상을 예정하는 계약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위와 같이 근로기준법 제20조의 입법 취지에 충실한 판결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