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지배력 있는 원청사가 노조법상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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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인사노무 실질적 지배력 있는 원청사가 노조법상 사용자 사내하청 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사용자 책임 요구 커질 듯

기사입력2025-09-12 13:30

이동철 객원 기자 (leeseyha@inochong.org) ㅣ다른기사보기

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서울행정법원 제3부는 한화오션(과거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 한화오션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한화오션이 직접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 사건에서, 한화오션이 하청업체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거부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라고 지난 7월25일 판결했다(서울행정법원 2023구합 55658·56231판결).

최근 노조법 제2조와 제3조의 개정 움직임이 가속하는 가운데 직접적 고용관계가 없는 원청회사의 하청 노동조합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이라 주목된다.

◇사건의 경위=원고 회사는 선박건조 및 해양플랜트 제작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국내 최대규모 조선업체다. 조선업은 특성상 선박건조에 긴 시간과 대량 노동력이 투입되는바 경기변동에 따른 수주 증감의 편차가 커 하청노동의 비중이 높다. 생산의 전 과정에서 대규모 설비와 특수장비를 이용한 복잡하고 연속된 공정이 원청회사의 조선소 내에서 이뤄지며, 이 과정에서 외부 노동력이 사내하청의 형태로 운영된다.

참가인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원고 회사 사내하청지회(이하 참가인 노조)는 2022년 1월 원고 회사를 상대로 노조활동 보장 및 노동안전 관련 의제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원고 회사는 참가인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 원고 회사는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과 근로계약 관계가 없어 참가인 노조와 단체교섭을 해야 할 지위에 있지 않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참가인 조합은 2022년 4월 다시 원고 회사에 ①성과급 지급, ②학자급 지금, ③노조활동 보장, ④노동안전, ⑤취업 방해금지 등 5개 의제에 대해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원고 회사는 교섭 요구사실을 공고하지도 않고 단체교섭에 응하지도 않았다.

이에 참가인 노조는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원고 회사가 단체교섭 요구사실을 공고하지 않고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사실을 들어 “노조법 제81조 제1항 3호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경남지노위는 원고 회사가 단체교섭의 당사자가 아니라며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참가인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고, 중노위는 2022년 12월 초심 판정과 달리 원고 회사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며, 원고 회사가 참가인 조합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다. 다만 교섭 요구사실 공고를 하지 않은 행위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봤다. 이에 원고 회사는 중노위 재심판정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참가인 노조는 원고 회사의 교섭 요구사실 미공고를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고 본 중노위의 판정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행정법원 재판부는 두 사건을 병합해 판결했다.

◇당사자의 주장=원고 회사는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관계에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인 참가인 노조지회 노동자들과 근로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가인 노조는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의 사용자는 근로계약 관계의 유무와 상관 없이 해당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원고 회사가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고 회사가 사내하청업체 근로자의 전반적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원고 회사가 이 사건 단체교섭 요구에 불응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라는 것이다.

◇법원의 판단=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0년 3월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근로계약 관계가 없어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선고 2007두 8881)을 내렸다.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4호는 사용자는 부당하게 노조의 활동에 지배·개입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당시 대법원 재판부는 사내하청업체의 사업 폐지를 유도하는 등 하청노조의 활동을 위축시켜나 침해한 현대중공업의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이번 사건 재판부는 해당 판례를 근거로 노조와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부당노동행위의 상대방인 사용자에 대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의 권한 및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설시했다.

앞의 현대중공업 사건에서는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4호의 부당한 지배·개입의 사용자였는데, 이번 한화오션 사건에서는 정당한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은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의 사용자 문제였다.

서울행정법원은 한화오션이 하청업체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거부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라고 판결했다.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재판부는 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3호의 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노조법의 입법 목적을 판단기준으로 제시하고, 헌법에 규정된 단체교섭권의 기본권적 성격을 고려한 법률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대규모 자본과 노동력의 투입이 요구되고 공정이 세분화된 제조업 분야에서 원청이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해 실질적 작업 지시 및 감독을 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하청업체와 교섭만으로 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중심에 두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며,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일정한 지배력 또는 결정권을 갖는 원청이 그에 상응하여 교섭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헌적 법률해석”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근로계약 관계 부재를 이유로 원청의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하청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노조법상 예정한 제도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노사 간 긴장은 비제도적 방식으로 분출될 것이라 우려했다. 이는 노조법 제1조가 정한 노동쟁의 예방 해결 및 산업평화 유지 목표에 어긋난다. 재판부는 “하청근로자의 노동력을 제공받아 이익을 누리는 원청이 그 권한에 상응하는 집단적 노사관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우리나라가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약에 대한 해석과 권고를 근거로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응낙 의무를 인정했다. ILO 감독기구들은 “단체교섭권이 근로계약이라는 법률관계의 존재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에 해당하는 만큼 비전형적인 고용형태 노동자들에게도 집단적 교섭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권고 의견을 내고 있다.

재판부는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성을 판단할 때 원청으로서 교섭의 비효율이 발생하고, 영업의 자유를 침해당하며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원고 회사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재판부는 개별교섭의 부담은 다면적 고용관계로 경영상 이득을 취하는 원청 사용자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며, 노동법 영역에서 처벌조항에 관계되는 근로자성, 파견근로 적법 여부, 위장도급 판단 역시 근로계약의 실질에 기초해 판단된다는 점을 들어 원고 회사의 항변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원청회사의 경영 목적에 따라 사내 하청근로자에게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성과급과 학자금이 지급되고 그 재원이 원청회사에 의해 마련되는 점에서 성과급과 학자금 지급에 있어 원청회사의 하청근로자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인정했다. 또한 노동안전에 관해서도 원고 회사는 단순히 도급인으로서 지위를 넘어, 사내하청업체의 안전과 보건체계 전반에 대해 규율과 지침을 부과하고 그 이행을 사실상 감독해 온 점을 들어 참가인 조합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다만 노동조합 활동의 보장 문제에 있어서는 노동조합 사무실이 반드시 원청 회사 내에 위치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며, 하청노조와 하청업체 사이에 자율적으로 결정할 영역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들어 “원청회사가 사용자로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취업 방해금지의 의제에 관해서도 이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 사용하거나 통신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상 의무에 해당해 단체교섭을 통해 별도로 합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원청 회사에 단체교섭의 의무가 있다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원고 회사가 참가인 조합이 제기한 성과급과 학자금, 노동안전 의제에 대해 실질적으로 사내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지배·결정할 지위에 있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므로 근로관계의 부존재를 들어 교섭에 응하지 않은 것은 부당노동행위라 판단했다.

◇판결의 의의=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다면적 고용관계라는 개념으로 제조업의 사내하청의 구체적인 실태에 기반해 노조법의 입법취지와 노동3권을 명시한 헌법 제33조 1항, 그리고 국제노동기구의 단결권 보호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기본협약의 해석 등을 풍부한 법리로 제시했다.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하급심의 판결에 불과하지만 2010년 대법원의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노조활동의 지배 개입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사용자 인정 판례를 시작으로 2023년 CJ대한통운의 하청 택배노조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성 인정에 이어 실질적 지배력 설을 구체화한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이번 판결로 향후 사내하청 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원청 사업주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