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은 ‘말하기’도 막고 ‘목소리’ 출현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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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검열은 ‘말하기’도 막고 ‘목소리’ 출현도 막는다 중립이라는 이름의 ‘부드러운’ 검열도 마찬가지

기사입력2025-07-09 16:30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전체주의 체제는 검열을 통치의 한 방식으로 사용했다. 1933년 나치 독일은 훔볼트 대학 맞은편의 광장에서 수천 권의 책을 모아 불태웠다. 마르크스, 카프카, 프로이트 등 갖가지 서적이 ‘반독일적 사상’을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유사한 사례를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939년부터 1975년까지 스페인을 통치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독재 정권은 고전을 제외한 모든 문학을 사전 검열했다. 또한 19세기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주의 국가들이 피식민지의 기록과 문헌을 파기하고, 일부를 자국 도서관 등으로 옮겨 피식민 주체들로부터 분리한 역사 역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할 테다.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 참여작가 레이니어 레이바 노보(Reynier Leyva NOVO)는 검열 사태를 보도한 신문지로 자신의 작품을 포장했다.

이러한 검열에는 저항이 뒤따랐다. ‘사미즈다트(Samizdat)’라고 불린 소규모 출판 운동이 대표적이다. 소련 치하에서 발언권을 박탈당한 예술가와 언론인들은 금서나 ‘비합법적’ 출판물을 100부에서 1000부 내외 자가 제작하여 유통하곤 했다. 이러한 지하 출판물은 손에서 손을 타고 알음알음 공유되었으며, 공론장 바깥의 공론장을 만들어냈다.

전체주의 체제에서의 검열은 비교적 구체적인 형태의 폭력을 통해 수행되었다. 검열의 주체 또한 그런대로 명확했다. 하지만 오늘날 행사되는 검열의 경우, 그 힘의 작동이 비가시적이고 때로는 교묘하다. 미술가 박찬경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전 ‘자이트가이스트 – 시대정신’(2013)에서 임옥상과 이강우의 작업이 검열되었던 상황을 회고하며, 그것이 미술관의 자기 검열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진단한 적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기의 사전 검열과 달리, 큐레이터 등의 전시 주체가 문제가 될 만한 작업을 알아서 제거하는 검열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노동자이기도 한 큐레이터는 직장 내에서의 성과나 고과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검열의 수행자가 된다. 하나의 행사를 제대로, 매끄럽게 작동시켜야 한다는 직업의식 아래 ‘부드러운 검열’이 작동한다. 이때 검열은 통제나 폭력의 언어가 아닌, 설득과 화해의 언어를 빌어 구현된다.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발생한 검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예술감독 츠다 다이스케(津田大介)는 2015년 도쿄에서 개최되었던 전시 ‘표현의 부자유전’(2015)을 트리엔날레에 초청했다. 위안부 문제, 식민지 지배, 야스쿠니 신사와 헌법 9조 등 일본 내에서 논의되기 힘든 주제를 과감히 다루었던 해당 전시를 트리엔날레에서 확장시켜 공론해보자는 취지였다. 전시는 금방 논란이 되었다. 아이치현이 위치한 나고야시의 시장이 직접 전시장에 방문한 뒤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고, 그 무렵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는 트리엔날레에 국가 보조금이 지급되었음을 강조하며 문제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표현의 부자유전’을 다시 만든 ‘표현의 부자유전 – 그 이후’는 개최 3일 만에 중단되었다. 민원과 항의, 테러 예고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예술감독의 판단이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것이 공식적인 설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트리엔날레는 시끄럽게 부풀어 오른 여론을 그저 차단하고, 닫아버렸을 뿐이었다.

2019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김서경·김은성의 ‘평화의 소녀상’(2011). <출처=Kyodo News>

전체주의 체제가 후퇴한 것처럼 보이는 오늘, 어째서 검열은 지속되는 것일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체제가 저문 뒤에도, 파시즘이 하나의 미시적인 행동 양식으로 연속되기에 무의식적인 검열이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나타나는 ‘부드러운 검열’은 완전히 교묘하거나 악의적이라기보다, 종종 필사적이다. 누구도 문제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고, 성과 기반으로 측정되는 직장 내 감사로부터 안전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노동자의 자기방어가 곧 검열 조치로 이어지곤 한다. 사회는 불안정한 노동 현장을 구성함을 통하여, 검열 또한 자연스럽게 수행한다.

최근에도 검열이 발생했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의 전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강에 스며든다’(2025) 도록에 실릴 예정이었던 미술평론가 남웅의 글이 게재 거부된 것이다.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측은 남웅의 글이 12·3 비상계엄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중립적이지 않다며 수록을 거부했다. 그러나 미술 작업을 하고,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언제나 중립이란 무엇인가 묻고, 그러한 틀로 수렴되지 않는 바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의아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소리’와 ‘말하기’를 구분했다. 그는 ‘말하기’, 즉 로고스만이 정치적 숙의와 행동을 매개한다고 보았고, ‘목소리’는 감각을 단순하게 소통하는 능력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닉 콜드리(Nick Couldry)는 이러한 구분을 뒤집는다. 콜드리는 경제적 삶을 최우선적 가치로 갖는 신자유주의 독트린이 ‘목소리’의 가치를 점차 파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말하기’에 의하여 짓눌렸던 ‘목소리’의 가치에 주목할 것을 주장했다.

검열은 ‘말하기’를 가로막을 뿐 아니라, ‘목소리’가 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비좁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검열은 특정한 전시나 행사를 이루는 요소를 선택하고 제외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없으며, ‘목소리’의 가치를 파괴하며 인간적 삶을 이루는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로 여겨져야 한다. ‘부드러운 검열’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