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기술자료 요구 거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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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정책법률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기술자료 요구 거절하라 기술자료 요구는 그 목적을 위해 필요한 최소범위 내에서 가능

기사입력2024-10-28 12: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최근 대법원은 하청업체의 기술자료를 탈취해 경쟁업체에 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HD한국조선해양에 벌금형을 확정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00년대 초반 엔진에 쓰이는 필수부품 피스톤을 삼영기계와 협력해, 국산화하고 독점으로 공급받았지만, 2014년 조선 경기부진으로 경영위기 상황을 맞이하자 납품업체를 이원화해 단가를 낮출 목적으로 삼영기계에 기술자료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삼영기계에 이원화 계획을 알리지 않은채 이원화를 완료한 2016년 5월 삼영기계에 단가인하를 압박해 약 11%를 낮춘 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삼영기계와 거래를 중단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품질관리를 위해 기술자료를 제공받았을 뿐이라고 했지만, 법원은 HD한국조선해양이 하도급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최원경 법무법인 세결 변호사는 경기도와 한국준법진흥원이 지난 25일 개최한 ‘2024 경기도 하도급 분야 공정거래 교육’에서, HD한국조선해양의 하도급법 위반 판례는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기술자료를 부당하게 유출해 경쟁사업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원가절감을 하려 한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기술 유용·유출 제재 강화=하도급 거래에서 원사업자가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유용해 손해를 끼치는 일들이 빈번해지면서, 기술자료 유용·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기관이 전방위적으로 사건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하도급법에 따른 기술탈취 조사를, 중소벤처기업부는 상생협력법에 따른 기술탈취 조사를, 특허청은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아이디어 탈취 조사를, 그리고 법원의 특허법상 특허무효소송, 법원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 등이 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공정위는 2022년 12월 중소기업 기술탈취 사건을 전담으로 처리하는 기술유용감시과를 신설하고 관련 인력을 확충했으며, 올해 초에는 원사업자의 기술유용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기존 손해액의 3배에서 5배까지 강화하는 내용의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또한 공정위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 보호를 위해 2021년 하도급법을 개정하고 기술자료의 요건에서 비밀관리성 기준을 완화했다. 기존 기술자료의 비밀관리성 요건을 ‘합리적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된 자료’에서 ‘비밀로 관리되는 자료’로 완화했다. 또한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의무화하고 손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의 산정에 필요한 경우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법원이 자료제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최 변호사는 기술탈취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원사업자의 노력과 함께 수급사업자 또한 기술유용 방지를 위한 조항을 파악하고, 기술유용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도급법 제12조의 3에서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본인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도록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를 입증할 경우에는 요구할 수 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기술자료는 수급사업자에 의해 비밀로 관리되는 것으로서 제조·수리·시공 또는 용역수행 방법에 관한 자료를 의미한다. 특허권,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저작권 등의 지시재산권과 관련된 기술정보·자료로서 수급사업자의 기술개발, 생산, 영업활동에 유용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또한 제조·수리·시공 또는 용역의 완성을 위해 사용되거나 참고되는 정보 또는 그러한 정보가 기재된 유·무형물로 승인도, 설계도면, 회로도, 작업공정도, 작업표준서, 운용메뉴얼, 시방서, 성분표, 배합요령, 소스코드, 임시시험계획서, 개발연구노트, 부품 제조방법, 제조공정 사진, 부품 재질 사양서, 부품 목록, 품질관리자료, 작업표준서, 고장형태 영향 분석서 등이 포함된다.

◇정당한 사유 요건을 갖춰야=공정위의 2023 하도급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에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원사업자의 7.4%가 ‘그렇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득한 기술자료 활용에 대해서는 원사업자의 81.1%가 공동특허, 공동기술개발 약정 체결, 제품 하자의 원인규명 등 정당한 사유에 한정해 사용했다고 응답했지만, 14.6%는 정당한 사유 외의 목적으로 원사업자를 위해 사용했다고 답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최 변호사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사유 요건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도급법이 정한 정당한 사유는 위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절차적, 기술적으로 불가피한 경우다. 공동특허 출원을 위해 필요한 기술자료, 공동기술개발 약정 범위 내에서 필요한 기술자료이거나,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공동으로 기술개발 약정을 체결하고 약정 범위 내에서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또, 제품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 하자와 직접 관련된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기술자료를 요구할 때는 요구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 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다.

기술자료 요구서에는 ▲기술자료 제공 요구목적 ▲요구대상 기술자료와 관련된 권리귀속 관계 ▲요구대상 기술자료의 대가 및 대가의 지급방법 ▲요구대상 기술자료의 명칭 및 범위 ▲요구일, 제공일 및 제공방법 ▲그 밖에 원사업자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가 정당함을 입증할 수 있는 사항 등이 기재돼야 한다.

원사업자는 기술자료 요구서의 법정 기재사항을 미리 협의해 수급사업자에게 교부하고 기술자료를 제공받는 날까지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한 후 이를 7년간 보존해야 한다.

최 변호사는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 등의 판단은 상당히 넓게 인정되고 있고, 원사업자가 자료를 특정해 요구하지 않고 그 요구범위가 다소 포괄적이었더라도 요구행위로 인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도급법 위반 사항에 대한 신고는 거래가 끝난 후 3년 이내이며, 하도급상 처분시효가 도과돼도 민사상 소멸시효가 도과되지 않으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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