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미적 감상 넘어 사고와 논쟁의 촉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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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예술은 미적 감상 넘어 사고와 논쟁의 촉발 도구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다…마르셀 뒤샹과 체스 게임㊤

기사입력2025-01-26 1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샘’이라는 작품으로 현대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 그는 예술이라는 체스판 위에서 규칙을 바꾸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수를 두었던 혁명가였다.

그의 삶은 끊임없는 질문과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예술의 궤적에서 한 발짝 물러나,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무한한 세계를 열었다. 그의 손끝에서 소변기는 예술이 되었고, 체스판은 캔버스가 되었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예술의 경계와 정의를 다시 쓰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체스광’ 마르셀 뒤샹=마르셀 뒤샹은 예술적 혁신과 자유를 추구했던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알려졌지만, 그의 예술세계의 중요한 축은 체스였다.

마르셀 뒤샹, ‘체스 게임’, 1910, 캔버스 위에 유채, 114×146.5cm,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출처=필라델피아 미술관>

1887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그의 예술적 시작은 비교적 평범했다. 그는 후기 인상주의와 입체파의 영향 아래에서 작업하며 화가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술은 단지 기술이나 양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창작이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은 기성품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한, 즉 ‘레디메이드(ready-made)’ 개념으로 새로운 예술적 실천을 보여준 ‘샘(Fountain, 1917)’이라는 예술작품으로 나타났다. 그는 캔버스와 물감을 넘어선 예술의 가능성을 탐구했던 것이다. 뒤샹은 소변기에 사인하고 ‘샘’이라는 이름 붙이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는 예술이 단순히 미적 감상에 그치지 않고, 사고와 논쟁을 촉발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그가 엄청난 체스광이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부 미술사학자는 그의 삶에서 체스가 예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뒤샹은 1920년대 후반부터 예술활동을 줄이더니, 체스에 심취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946년부터 20년간은 예술활동을 하지 않고 잠적했다.

자취를 감췄던 인생의 마지막 20년 동안 그는 문구멍으로 누드를 보는 투시화 형태의 설치미술인 ‘에탕 토네(Etant Donnés, 1946~1966)’를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뒤샹이 체스를 위해 미술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이 작품으로 이러한 소문이 잠잠해지긴 했으나, 그는 잠적하기 전까지 체스에 몰두했으며, 죽는 순간까지도 체스를 놓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 미술관에서 나체의 에바 바비츠(Eve Babitz)와 체스를 두는 모습, 1963. <사진 및 출처=Julian Wasser>

65세가 되던 1952년 그는 “모든 예술가가 체스 선수는 아니지만, 모든 체스 선수는 예술가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76세가 되던 1963년에는 그의 회고전이 열린 로스앤젤레스 패서디나 미술관(Pasadena Art Museum) 한가운데에서 나체의 에바 바비츠(Eve Babitz)와 체스를 두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1968년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와 전자 체스를 두는 퍼포먼스를 한 후, 고향 프랑스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뒤샹은 예술과 체스를 동시에 접하며 성장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형제들과 체스를 두며 전략적 사고와 지적 놀이의 매력에 빠졌다.

1910년, 뒤샹은 초기작 ‘체스 게임(The Chess Game)’을 발표하며 체스를 자신의 예술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풀밭 위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체스를 두는 인물들을 그린 그림으로, 당시의 후기 인상주의적 화풍을 따르고 있다. 이어서 그는 1911년 ‘체스 선수의 초상(Portrait of Chess Players)’을 통해 체스를 다시 탐구했으며, 입체파 화풍을 활용해 체스의 복잡한 전략과 기물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 초기 작업들은 단순히 체스라는 놀이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체스를 통해 예술의 구조적 요소와 규칙성을 탐구하려는 그의 의도를 보여준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