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새 가치사슬 만드는 경제질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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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창업은 새 가치사슬 만드는 경제질서의 변화” “자생적인 가치사슬을 만들어내는 구조 혁신이다”

기사입력2025-05-27 10:25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창업은 기술개발이나 경영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사슬을 구축하는 근본적인 경제질서의 변화.”

배종훈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한국중소기업학회와 벤처기업협회가 최근 개최한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역동적 창업·벤처 생태계 활성화 방안 모색 포럼’에서 ‘스타트업, 다르게 일하기’라는 주제발제를 통해, 창업은 단순히 마케팅, 기술개발 등의 도구적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즉 “창업은 기술이나 마케팅 같은 기능적 접근이 아니며, 스스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정의하고, 자생적인 가치사슬을 만들어내는 구조 혁신”이라는 설명이다.

◇창업 생태계와 ‘팁스’ 프로그램=한국 창업생태계에서 제1벤처붐은 90년대 후반 정부 주도의 지원정책으로 나타났다. 1997년 벤처기업인증제도가 시행됐고, 1998년 3월 당시 중소기업청 내에 벤처기업국이 신설됐다. 스톡옵션제도 도입, 투자지분 양도소득 비과세 등 정책지원으로 새로운 창업시도가 이어졌다. 벤처붐이라는 광풍을 버텨 낸 기술기반 창업의 노력은 지금의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기술형 대기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제1벤처붐은 생태계 내부의 대리인 문제, 주가조작 목적의 분식회계와 투자금의 비정상적 지출 등 다양한 도덕적 해이가 노출되며, 결국 2000년 코스닥 시장의 주가폭락과 함께 마무리됐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배 교수는 한국 창업생태계의 변곡점으로 2013년을 꼽았다. 이 시기는 중기부 주도로 ‘팁스(TIPS)’ 프로그램이 시작된 해로, 민간과 정부가 협력해 기술기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모델이 본격화됐다. 그는 “그전까지 창업은 일부 기술자나 벤처캐피털 영역에 머물렀지만, 팁스의 도입은 정부가 창업을 체계적으로 산업화하고자 했던 신호탄이었다”고 설명했다.

제2벤처붐은 2020년 코로나19 감염병 위기로 경기가 하락하는 시점에 나타났다. 기업가치 1조원대로 평가받는 비상장 스타트업, 즉 유니콘 기업은 2017년 3개에서 2020년 12월 13개로 늘었고 신설법인이 3년 전 대비 25% 증가했다. 벤처기업의 고용창출 역시 3년전 대비 7.8% 증가했으며, 4조3000억원의 자본이 벤처기업에 투자됐다.

배 교수는 진정한 창업은 기존의 질서로부터 ‘다르게 일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스타트업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조직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사례를 통해 창업가 정신의 핵심을 ‘자원 제약 상황에서의 공학적 문제 해결’로 정의했다. 특히, 자금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기술적 완성도를 이뤄낸 딥시크(DeepSeek) 사례를 언급하며, 이들은 고가 장비 없이도 혁신적 결과물을 내는 창업가 정신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국중소기업학회와 벤처기업협회가 지난 22일 개최한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역동적 창업·벤처 생태계 활성화 방안 모색 포럼’. ©중기이코노미

◇스타트업은 국가 R&D 주요 원천=최근 창업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배 교수는 “창업은 경제성장률에 따라 자동으로 늘거나 줄지 않으며 외생적 현상”이라고 했다. “창업은 오히려 경제의 구조적 변화나 시장의 빈틈을 감지하는 창업가들의 인식 변화에 의해 결정된다”며, “창업 건수의 일시적 증감은 본질적인 위축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창업이 ‘고용창출’의 수단으로만 이해되는 데에도 우려를 표하며, “AI 시대에는 소수의 창업자가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창업팀 평균 규모는 줄고 있다. 이제 창업은 고용창출보다 ‘고부가가치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창업 기업의 높은 사망률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그는 “스타트업의 자연스러운 퇴장은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이라며, “오히려 생존률이 높다는 것은 시장에서 혁신적 대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B급 스타트업이 자금과 인재를 장악해 A급 창업자에게 기회가 가지 않는 구조는 오히려 생태계를 경직시킨다”며, 유동화 이벤트를 통한 자원 재배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누가 성공하느냐보다, 어떻게 빠르게 실패하고 자원이 재분배되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배 교수는 창업생태계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접근을 “투자 대비 효율성이 가장 높은 미래 설계전략”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의 경우 VC(벤처캐피털)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은 국가 R&D의 주요 원천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생존을 기반으로 한 정책에서 벗어나 경쟁을 기반으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창업생태계에 들어가는 예산은 대기업 한 곳의 분기 실적보다 작지만,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산업적 파급력은 전 산업구조를 바꿀 수 있는 수준”이라며, “발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시장과 사회에 구현되는가이고, 기술은 실험실이 아니라 창업 현장에서 완성된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