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物我) 통해 경계 너머 세계를 탐색하는 여정

프린트

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물아(物我) 통해 경계 너머 세계를 탐색하는 여정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김대섭, 물아(物我)–‘경계 너머’展

기사입력2025-06-02 09:55

김현성 객원 기자 (artbrunch@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김대섭 작가가 27년간의 화업을 되짚는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한다. 갤러리나우에서 6월 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 연작 ‘물아(物我)’ 시리즈 신작 20여 점과 함께 지난 세월동안 이어온 네 개의 주요 회화 시리즈를 만날 수 있다.

김대섭은 오랜 시간 풍경과 정물이라는 전통적 소재를 자신만의 독창적 언어로 해석해온 작가다. 특히 자연과 인간, 사물과 자아의 경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화면 위에 펼쳐 보이며, 관람객에게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제시한다.

물아(物我), 45×37, Oil on wood, 2025.

김대섭의 작업은 재료가 특이한데 캔버스 대신 버려진 고재를 사용한다. 오래된 나무의 결, 나이테, 옹이 등 살아있는 흔적 위에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과일들은 마치 또 하나의 생명체처럼 화면 위에서 숨을 쉰다. 작가는 “오래된 나무 위에 작업을 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무엇과의 재결합”이라고 말한다. 나무의 촉감과 결,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색채와 선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준다.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물아(物我)’ 시리즈는 과일의 껍질에 맺힌 하얀 당분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그 표면을 우주의 행성에 비유하며, 사물과 자아, 이미지와 실재, 회화와 오브제,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허문다. 흑백의 과일 표면은 더 이상 과일이 아니라, 때로는 행성처럼, 때로는 하나의 우주처럼 관객 앞에 나타난다. 이로써 김대섭은 회화가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현실의 층위를 탐색한다.

‘터–삶’ 연작은 작가가 직접 밟아온 공간과 그 안에 깃든 일상의 흔적을 담는다. 인물이 사라진 풍경 속 자전거, 농기계 등은 평범한 일상에 깃든 삶의 결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Memory’ 시리즈에서는 유년 시절의 감각과 기억, 바람과 들꽃, 병아리 발자국 등 섬세한 기억의 단편들이 화면 위에 소환된다.

‘사의–사실’ 시리즈는 동양화의 여백과 서양화의 사실적 정물을 병치하며, 전통회화 언어 간의 긴장과 조화를 탐구한다.

물아(物我), 222×222, Oil on wood, 2025.

그의 작품은 부드러운 선과 선명한 색채, 그리고 공간적 깊이가 돋보인다. 특히, 고재 위에 펼쳐진 세계는 생성과 소멸, 환생의 리사이클링 과정을 품고 있어 단순한 정물화의 범주를 넘어선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존재의 본질, 삶의 기억,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사유하고자 한다”며, “회화의 언어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감각과 질문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김대섭은 국내외에서 36회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평론가상과 수채화 대상 등을 수상한 그는 미술은행, 서울지방법원, 대구법원 등 여러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김대섭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시간의 누적이 아닌, 감각과 철학이 응축된 서사로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물아(物我)’를 통해 경계 너머의 세계를 탐색하는 그의 긴 여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존재와 기억, 그리고 예술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예술만세 김현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