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IRA법은 “비상” 상황 아니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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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레고랜드·IRA법은 “비상” 상황 아니란 것인가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 상황 진단도 없고 대책도 뜬구름

기사입력2022-10-28 17:00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열렸는데, 놀랍게도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기업 자금경색 위기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정부가 지금 상황을 “비상” 경제회의에서 다룰 만큼 비상 상황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황의 심각성을 감추고 싶은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어느 쪽이건 간에, 시장은 정부의 인식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이미 금융위가 50조원을 공급한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도 신용등급이 높은 공기업 회사채 마저 유찰되고 있다. 정부 대응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뒤따라 6조원 규모의 채권매입 계획을 발표한 상황이지만, 기업 자금경색 상황의 급한 불을 끄고 시장 상황을 안정화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그런데 전국민 앞에 생중계되는 비상경제민생회의라는 좋은 기회에, 신뢰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정부의 인식 표출이나 발언이 없었다는 점은 너무나 실망스럽다.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제로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열렸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기업 자금경색 위기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사진=뉴시스>

이날 회의는 특별히 수출에 초점을 맞춘 자리였다고 이해하려 해도,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복합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데 수출 활성화가 핵심 키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이처럼 복합 위기 상황에서 수출활성화를 논의하는데 고금리와 고환율 상황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지 않은 것이 놀랍다. 과거의 통념은 고환율이 수출에 유리하다는 것이었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음에도 과거와 달리 수출의 급격한 증가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변화한 수출 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그에 부합하는 리스크 관리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원자재를 수입하고 이를 토대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이 내년도 경영계획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고환율에 대한 정부의 전망과 입장은 매우 중요한 판단의 근거다.

환율 리스크 관리 전략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게 부담스럽다면,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할 이유가 없다. 생중계를 결정한 이상,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고환율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논의한 뒤, 이를 토대로 수출전략을 수립했어야 한다.

현안으로 좁혀서 봐도, 미국의 IRA법에 따른 자동차 수출 대응이 거론되지 않았다. 이 법이 한국의 대미 수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시장의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미국의 입장 역시 확고한 상황이다. 이날 비상경제민생회의의 안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지만, IRA법과 자동차 수출이 뒷전으로 밀릴 만한 사안일 수는 없다.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 또한번 확인된다.

중소기업 지원책 역시 마찬가지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는 여건 속에서, 종합지원 패키지를 마련하고 있고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언급을 하긴 했지만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 고금리 상황이 얼마나 오랜 기간 지속될지, 그에 따라 중소기업의 내년 자금사정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어야 한다. 중소기업들이 내년도 금리와 금융상황을 예측하고 자금과 경영계획을 수립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핵심 정보다.

이런 정보 없이 추상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만 밝혀서는,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한 의미가 퇴색된다. 반면, 정부가 중소기업 경영여건을 위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되레 커지니, 생중계로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한 것인지 모르겠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기업 자금경색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한박자 늦었다. 환율 대책이나 미국의 IRA법 대응에 있어서도 기민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에 시달렸다. 비상경제회의 생중계가 이런 우려를 덜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기 바란다. 위중한 인식과 기민한 대처 없이 헤쳐나가기엔 경제 상황이 너무나 위태롭다는게 시장의 평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