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만 친환경…‘그린워싱’ 규제 강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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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정보 ㅣ 정책법률 겉으로만 친환경…‘그린워싱’ 규제 강화 추세 기업, 광고성 자료부터 ESG 보고서까지 전방위 점검 필요

기사입력2025-06-20 12:3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1. 글로벌 석유회사 Shell은 자사 광고 캠페인에서 “Shell은 영국 140만 가구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5만 대의 전기차 충전기 설치와 600만 가구에 풍력에너지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Shell의 주요 사업은 여전히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연료 중심으로,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주체다. 광고는 Shell이 재생에너지 기업인 것처럼 소비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었고, 영국 광고표준청(ASA)은 사실을 일부만 제시해 전체적 오해를 유발했다며, 해당 광고에 대해 금지 처분을 내렸다.

#2.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은 전기차 모델 ID.4를 광고하며 “Zero Emission(제로 배출)”, “탄소중립(Carbon Neutral) 차량” 등의 문구를 사용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품 제조, 배터리 생산, 운송 등 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발생하며, 일부 광고는 하이브리드나 내연기관 차량까지 포함시켜 마치 모든 차량이 제로 배출인 것처럼 표현됐다. 이에 ASA는 광고 문구에 “운행 중 배출만 무배출임을 명확히 명시하라”고 권고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1일 ‘ESG 법률 강연&토크 세미나’를 개최했다. ©중기이코노미

친환경 이미지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이를 악용해 실제보다 친환경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 사례도 함께 증가하고 있어, 국내외 규제 당국의 대응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근우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개최한 ‘ESG 법률 강연&토크 세미나’에서 “그린워싱 규제 트렌드는 명확하게 강화되고 있으며, 기업은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 강화되는데, 인식은 낮아=이 변호사는 “그린워싱은 2018년 이후 급증했으며, 특히 석유·가스업종 등 특정 산업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EU와 미국 등에서는 그린워싱 사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도 조사가 본격화되면 유사 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경영진의 90%가 지속가능경영을 선언했지만, 이 중 58%만 관련 프로그램을 이행하고 있으며, 목표를 관리하는 기업은 22%에 불과하다. 또한, 경영진의 72%가 그린워싱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ESG 관련 연방 소송 중 54%가 그린워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ESG가 기업의 브랜드 전략에 깊이 관여하면서 워싱(washing) 이슈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이 변호사는 “앞으로는 그린워싱을 넘어 소셜워싱(Social Washing), AI워싱(AI Washing)까지 논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권 그린워싱 규제 본격화=금융권에서도 그린워싱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랩리스크(RapRisk)에 따르면, 2023년 8월까지 1년간 전 세계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 148건의 그린워싱이 발생했으며, 이 중 106건이 유럽 금융기관의 화석연료 투자와 관련돼 있었다. 이는 전년 대비 70% 증가한 수치다.

미국에서는 UN 책임투자원칙(PRI)에 가입한 대학퇴직연금펀드(TIAA)가 총 자산 약 1570조원 중 100조원을 화석연료에 투자한 사실이 드러나, 환경단체들이 회원자격 취소를 요구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EU와 미국은 금융권의 ESG펀드 명칭, 친환경 마케팅 그린워싱 등의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그린워싱 규제의 목적은 기업들이 제품과 비즈니스 관행을 보다 환경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압박하는데 있다.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정책 및 규제는 ▲ESG펀드 공시 요구 강화 ▲펀드 명칭과 마케팅 규제 ▲제품, 서비스, 펀드 상품 라벨링 ▲ESG정보공시 규제·표준 확대 ▲지속가능성 공시 인증 표준 ▲표시광고 규제와 가이드라인 ▲택소노미 등의 형태로 마련되고 있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국내 규제와 기업의 대응 현황=국내에서도 그린워싱 규제 강화에 동참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표시광고법)’은 소비자를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 광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또, 환경 관련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시행 중이다.

환경부는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현행 정책과 국내 기업 특성 등을 반영해 친환경 경영활동 표시광고를 8가지로 유형화, 그린워싱 방지를 돕고 있다. 또, 2022년 12월 녹색분류체계(Taxonomy) 가이드라인 및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그린워싱 적발 건수는 2021년 272건에서 2023년 4940건으로 급증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린워싱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10%,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응답은 26%에 그쳤고, “잘 모른다”는 응답은 43%로 나타나 기업의 인식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분석됐다.

◇경영진부터 실무자까지 대응을=이근우 변호사는 “기업의 ESG경영 관련 전략 및 성과를 자신감 있게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는 그린워싱 리스크를 사전에 식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최고경영진을 포함한 전 구성원 대상 교육과 인식 제고 활동이 선행돼야 하며, 규제 대응을 위한 체크리스트와 위험 식별 절차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직 내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실무 워크숍과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대응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실무자가 규제 임박성을 인지하고, 모든 ESG 커뮤니케이션 자료에 대해 근거와 표현의 타당성을 검증·문서화하는 절차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그린워싱 규제는 이미 시작됐다. 법률, 행정, 소비자, 금융권 등 다양한 채널에서 규제가 현실화되고 있는 만큼, 기업은 광고성 자료뿐만 아니라 ESG 보고서까지 전방위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