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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체스와 예술…“삶이란 끝나지 않는 창조의 과정”
체스 통해 창조적 행위의 가능성 탐구…마르셀 뒤샹과 체스 게임㊦
- 기사입력2025-01-30 15: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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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체스 게임의 논리와 규칙이 예술의 창조적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체스판 위의 각 기물이 가진 움직임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이러한 무수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은 예술가가 캔버스에 색을 칠하고 구도를 고민하는 과정과 유사했다.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뒤샹은 체스를 통해 예술의 본질, 즉 창조적 행위의 자유와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체스와 개념미술의 융합=그가 체스를 개념적 매체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917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그는 뉴욕에서 ‘덫(Trap)’이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체스와 예술을 통합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이 작품은 작업실 벽의 체스판을 배경으로 바닥에 옷걸이를 놓은 설치작업으로, 체스의 전략적 움직임을 3차원 현실로 끌어낸 것이었다.
마르셀 뒤샹, ‘체스 선수의 초상’, 1911, 캔버스 위에 유채,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출처=필라델피아 미술관>‘덫’은 체스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말 한 개를 미끼로 내어주는 전략적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뒤샹의 ‘개념미술’ 철학을 체스와 결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며 뒤샹은 체스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 그는 1925년에 제3회 프랑스 체스 선수권 대회 포스터를 디자인했고, 이 대회에 프랑스 국가대표 체스팀에 합류해 출전하여 3승3패2무로 체스 마스터 타이틀을 획득했다. 뒤샹은 1928년부터 1933년까지 프랑스 선수권 대회와 체스 올림피아드에서 계속 참여했다. 1932년에는 체스 전략서를 출간했으며, 1944년에는 유명 체스 잡지인 ‘체스 리뷰’에 체스 문제를 기고하기도 했다.
뒤샹의 체스 사랑은 제목에 ‘체스’가 들어간 개념 작업으로 이어졌다. ‘덫’은 체스에 대한 간접적인 표현이었다면, 1943년 제작한 ‘포켓 체스 세트(Pocket Chess Set)’는 제목에 체스가 들어있을 정도로 체스가 중심이 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체스판과 고무 스탬프로 만든 체스로, 서신을 통해 체스를 두는 원격 체스 게임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다.
그는 1945년 1월 6일에 체스 기물 총 32개를 상징하는 32명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뉴욕 줄리앙 레비 갤러리(Julien Levy Gallery)에서 체스 토너먼트를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비대면 체스게임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사진작가 케이 벨 레이날(Kay Bell Reynal)이 1952년 찍은 ‘마르셀 뒤샹이 그의 스튜디오에서 체스를 하고 있다’라는 사진 중 하나인 ‘고무장갑이 있는 포켓 체스 세트’는 마치 키보드 위에 올려진 사람의 손이 원격 온라인 체스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1945년 1월6일 줄리앙 레비 갤러리에서 열린 체스 토너먼트에서 줄리앙 레비, 프레더릭 키스러, 알프레드 바 주니어, 잰티 샤윈스키, 비토리오 리에티, 맥스 에른스트, 도로테아 태닝, 조지 콜타노프스키, 마르셀 뒤샹. <사진=Dorothea Tanning, 출처=The Destina Foundation, New York>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한 체스 게임을 넘어, 체스판을 예술적 창조의 무대로 확장하려는 뒤샹의 의지를 보여준다.
뒤샹은 체스를 통해 예술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체스를 “예술과 마찬가지로 창조적 사고와 지적 노력이 필요한 작업”으로 보았다. 체스는 그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표현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었다.
뒤샹의 체스에 대한 열정은 그가 예술에서 추구했던 자유와 개념적 실험의 연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체스에 대한 열정은 단순히 게임을 넘어, 삶 자체를 예술로 바라보게 한 철학적 통찰이었다. 뒤샹은 체스를 통해 예술적 사고의 한계를 확장하며, 자신의 인생을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남겼다. 그의 삶은 단순히 미술사 속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예술과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영원한 체스 게임과도 같다.
뒤샹은 체스판 위에서 마지막 수를 두며 “삶이란 끝나지 않는 창조의 과정”임을 우리에게 전하고 떠났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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