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이미지 소비방식…고유성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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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디지털 시대 이미지 소비방식…고유성 무력화 스크롤 시대, 우리는 어떻게 예술을 감상하는가㊤

기사입력2025-03-28 00:00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미덕이자 대세다. 대량 생산과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는 더 많은 것이 곧 더 나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미술 또한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이미지를 접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기술혁신이 198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디지털에 수렴되었고, 그 결과 폭발적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미지를 대량소비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 컴퓨터 모니터, 평면 TV 앞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디지털 이미지와 영상을 끊임없이 소비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이미지에 노출되고 있지만, 정작 깊이 감상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이미지 소비의 증가를 넘어, ‘보는 방식’ 자체의 전환을 가져왔다.

인스타그램 피드 이미지. <출처=https://www.creatopy.com>

사진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시각적 경험을 변화시켰듯, 현대의 이미지 과잉 시대는 ‘많이 보고, 빨리해치우는’ 시각적 소비방식을 정착시켰다. 멀티태스킹을 강요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3~4초마다 장면이 바뀌는 영화를 보고, 수십 개에 달하는 TV 채널을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돌리고,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수많은 사진과 숏폼 콘텐츠를 넘겨본다. 스마트폰 사진첩과 인스타그램, CCTV의 출력 화면은 바둑판 모양의 격자 형태로 다수 이미지를 동시에 뿜어내며 각각의 이미지가 지닌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무력화시킨다.

이러한 ‘보는 방식’의 변화는 관람자의 관람태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 제작방식, 작품의 전시형태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인식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박적 작용을 하고 있다.

◇이미지 과잉 시대의 미술계 풍경=빈틈없이 작품을 걸어놓은 아트페어 전시에서 관람자들이 그 많은 작품 이미지를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날 ‘많을수록 좋다’는 이미지 소비패턴이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가 많은 아카이브 전시에서 현기증 날 정도로 많은 이미지를 빽빽하게 붙이는 전시방식도 이미지 소비패턴과 관련 있어 보인다. 또한, 작은 이미지들을 수십 장씩 한 벽면에 가득 채워 전시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작가들이 많아진 것도 이러한 이미지 소비패턴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스마트폰 사진첩.

오늘날의 이미지 소비패턴은 개별 작품의 의미보다, 다수 작품을 보유한 한 명의 작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으로 이끄는 듯하다. 즉, 작가의 명성이 곧 작품의 가치로 이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기술복제시대 이전에도 이러한 경향은 미미하게 존재하던 현상이지만, 사진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차 강화되었고, 디지털 이미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대에 이르러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미술작품 평가시스템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소위 미술공모전이라 불리는 미술 경연대회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보통 하나의 실물 작품을 대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의 여러 작품 이미지로 심사하는 포트폴리오 심사로 대부분 바뀌었다(이후 2차로 두 작품 이상의 실물 작품의 전시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심사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발전으로 이미지 출력과 편집이 간편해지고 비용이 절감된 점과도 관련이 깊다. 또한, 다수의 작품을 한꺼번에 검토함으로써 공모전의 변별력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작용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심사의 초점이 ‘작품’ 자체가 아니라, ‘작가’를 발굴하는 형태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다량의 이미지를 평가함으로써, 이제 개별 작품보다 작가의 스타일과 브랜드 가치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