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소비’가 아닌 ‘감상’을 회복할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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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예술경영 이미지 ‘소비’가 아닌 ‘감상’을 회복할 방법은 스크롤 시대, 우리는 어떻게 예술을 감상하는가㊦

기사입력2025-04-02 14:26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불타는 유토피아’, ‘비평의 조건’ 저자)

SNS와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으로 인해, 이제 작가들은 개별 작품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전체적인 스타일과 세계관을 더욱 중요하게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과 같은 시각 중심의 플랫폼에서 팔로워 수와 피드의 통일성이 작가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면서, 개별 작품보다는 작가의 지속적인 시각적 정체성과 다작(多作) 여부가 더욱 강조된다.

이와 같은 흐름은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 아트시장에서도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의 ‘매일:첫 5000일’(Everydays:The First 5000 Days, 2021)이 있다. 그는 2007년부터 하루에 하나씩 디지털 아트를 제작해 5000일 동안 온라인에 올렸고, 이를 하나의 거대한 아트 프로젝트로 묶어 NFT로 판매했다. 이 작품은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 달러(약 900억원)에 낙찰되며 미술시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개별 작품이 아닌, 작가의 작업 과정과 스토리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소비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비플, ‘매일:첫 5000일’, 2021. <출처=https://onlineonly.christies.com>

◇작품보다 작가 브랜드를 구축=이 같은 변화는 작품의 개별성보다는, 다수 작업을 통해 형성된 작가의 서사와 브랜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 명의 작가가 대량의 이미지를 생산하고, 이를 디지털 플랫폼에서 지속적으로 노출하며, 결국 ‘작가 브랜드’가 곧 작품의 가치로 직결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 감상의 본질적 변화를 초래한다. 예전에는 작품 한 점 한 점을 깊이 감상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한 작가의 다작을 빠르게 스크롤 하며 소비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더불어, 전시방식 역시 개별 작품을 강조하는 형태에서, 작가의 작업 전체를 하나의 ‘컬렉션’처럼 구성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술복제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던 시대는 어땠을까? 재현된 이미지는 오직 작가의 손에서 나온 소량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 그때의 사람들은 하나의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을 것이다.

작품을 누가 그렸는지를 중요시하기보다 그저 하나의 작품에 깊숙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한 작가의 전체 작품세계’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 자체에 몰입하며, 그것이 주는 감동과 사유를 오래도록 음미했을 것이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 즉 원본 작품이 지닌 독창적 존재감과 시간·공간적 유일성이 그 시대에는 더욱 강렬했을 것이다. 오직 한 점밖에 존재하지 않는 원본 앞에서, 관객은 작품과 일대일로 마주하며 그 안에 깃든 작가의 흔적과 영혼을 직접 느꼈을 것이다.

노상호, ‘그랑기뇰의 가면’, 2014.

◇‘스크롤’에서 ‘슬로우’로=연구에 따르면, 관람객이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한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8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2010년부터 미술계에서는 ‘느리게 보기(Slow Looking)’, 즉 ‘슬로우 아트(Slow Art)’ 운동이 등장했다.

이는 2009년 미국의 필 테리(Phil Terry)가 창안한 개념으로, 디지털 시대의 빠른 이미지 소비방식에 반대하며, 하나의 작품을 깊이 감상하는 방식을 다시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최소 10~15분 동안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슬로우 아트 데이(Slow Art Day)’는 2010년 공식 출범 이후 박물관, 갤러리, 작가 스튜디오, 공공 예술장소 등 700여 장소에서 운영됐다. 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국제행사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등에서 현재까지 1500회 이상 열렸다. 올해는 2025년 4월 5일 토요일에 전 세계 다양한 장소에서 열린다.

지금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의 이미지를 소비한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넘기며, SNS 피드를 훑으며, 짧은 숏폼 영상들을 재생하며, 이미지와 영상을 흘려보낸다. 한 이미지에 오래 머물러 감상할 여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한 작품을 오래 감상하기보다, 많은 작품을 빠르게 소비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작가의 작품들’을 스크롤 하며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하게 조명되는 시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이미지 소비가 아닌 ‘이미지 감상’을 회복할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