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걷고 만지며 예술과 소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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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포토·인포그래픽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걷고 만지며 예술과 소통하다 최민지·최원서 작가…9월8일까지 서울공예박물관 ‘공예@인앤아웃’

기사입력2024-07-25 09:30

김범규 기자 (bgk7@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최민지 작가의 ‘CREATING MEMORIES:Swimming Pool’ 전시 전경 ©중기이코노미

“관람객이 작품을 만져보고, 올라타 보기도 하면서 실제적인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호기심이 많아 뭐든지 만져보고 싶은데, 일반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는 그럴 수 없잖아요. 그런 답답함을 이번 작품을 통해서 해소해 주고 싶었습니다.”

‘CREATING MEMORIES:Swimming Pool’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 최민지 작가가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2024년 시민 소통 공예 프로그램인 ‘공예@인앤아웃’ 공모에서 선정된 두 개의 설치작품을 오는 9월8일까지 전시한다. ‘공예@인앤아웃’이라는 이름처럼 관람객들은 박물관 안팎에서 자유롭게 공예작품을만져보기도 하고, 앉아보기도 하면서 예술을 누릴 수 있다.

서울공예박물관 홍보 담당은 중기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보통 미술관과 박물관은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콘텐츠를 선보이지만, 서울공예박물관의 시민 소통 공예 프로그램은 작가가 자신만의 전시 콘텐츠를 기획해서 전시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전시 콘텐츠를 보유한 국민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올해는 총 15팀이 선정됐는데 이 중 인앤아웃을 통해 두 작가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이 서로 소통하고, 우리네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이다.

최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앉아 쉬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공예마당에서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얕은 시간(shallow time)’의 최원서 작가 역시 “이 장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며, “동시대 공예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박물관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폐플라스틱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류 문명의 폐해가 집적돼 나타날 인류세(Anthropocene)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화두로 던진 최 작가는 ‘폐플라스틱이 쌓여 만들어지는 땅’이라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다. 작품은 폐플라스틱으로 3D 프린팅을 하는 과정을 통해 지표면에 퇴적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얕은 시간’은 폐플라스틱으로 3D 프린팅을 하는 과정을 통해 지표면에 퇴적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중기이코노미

그는 “층리는 퇴적 당시의 시대적 환경을 관측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지구의 역사책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층리를 플라스틱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플라스틱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사실 플라스틱이 지층에 생길 만큼 그리 긴 역사를 가지진 않았지만, 작품을 통해 의도적으로 확장 및 과장해 보여주기 위한 작가적인 재해석이 들어갔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며 “인류세라는 주제가 다소 어렵고, 딱딱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작품 안에 밈처럼 보일 수 있는 글자를 각인하는 등 조각적으로 풀어냈다. 외형은 벤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오가다 접촉해 보면서 이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대중에 예술의 문턱을 낮추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최민지 작가가 자신의 작품 위에 앉아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중기이코노미

최민지 작가의 ‘CREATING MEMORIES:Swimming Pool’은 어린 시절 수영장에서 경험한 작가 본인의 특별한 감정을 풀어낸 작품이다.

튜브 모양의 공예작품에 기자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를 이어간 최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 중 하나가 물에서 놀았던 것”이라며, “유년 시절의 기억은 사람의 자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내가 즐거웠던 기억을 작품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어린이도, 어른도 새로운 기억을 가져가면 좋겠고, 나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물을 안 좋아하든, 과거의 기억이 좋지 않았든 좀 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최민지 작가의 ‘CREATING MEMORIES:Swimming Pool’ 은 전시회장 입구를 알리는 사인부터 작품의 시작이다.

푸른색 타일로 표현한 수영장과 천장에 달린 모빌은 모두 행복했던 시절의 회상을 뜻한다. ©중기이코노미

모두가 행복하고, 좋은 기억을 가져가면 좋겠다는 목표 아래 이번 작업을 했다는 최 작가 역시, 지금의 모습으로 과거를 회상할 때 좀 더 이전의 기억들이 풍부해진다고 밝혔다. 매해 쌓인 다른 기억들이 이미 성장해 버린 자신을 통해 재현되기 때문이다.

그는 “기억을 둘로 나눴을 때, 저 멀리서 사진처럼 기억되는 장면이 있고, 감정적으로 기억되는 느낌들이 있다”며, “멀리서 바라봤던 사진 같은 장면은 작은 형상들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물에 떠 있을 때의 촉감,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 등 감정적인 기억은 커다란 사람 형상 등으로 나타냈다”며, 전시회 천장에 별처럼 달린 작은 모빌과 푸른색 타일로 표현한 수영장, 다양한 형태의 튜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최민지 작가가 어린 시절 느꼈던 자신의 기억을 되새기며 꼬마 최민지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하고 있다.

수영장에 앉은 도자 인형에서 슬픔이 느껴진다는 기자의 말에 최민지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 작가는 “이 모든 기억은 아버지와 관련돼 있다”며, “어렸을 때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있었다. 왠지 아버지가 오빠를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물가에 가면 그런 고민은 사라지고 행복해졌다. 아무래도 위험한 장소이다 보니 아버지는 나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킨십도 되는 거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며 “의도했던 건 아닌데, 작업을 하면서 은연중에 아버지와의 추억, 어린 시절 느꼈던 슬픔 등이 묻어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