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도입…소송 효율·공정성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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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디스커버리 도입…소송 효율·공정성 높이자” 기술탈취, 의료사고, 금융소비자 피해 등 증거확보 장치 필요

기사입력2025-07-29 11: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배임죄를 형사 아닌 민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이 시급합니다.”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오기형·김남근·이강일 의원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28일 공동 주최한 ‘이사의 충실의무 상법개정과 제도개선 과제’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현행 법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현재 한국에서는 민사소송으로 배임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형사 고발을 통해 강제 수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민사 중심 법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배임죄는 신뢰 침해 행위=최근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조항이 신설되면서, 배임죄 적용 범위가 과도하게 확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이 소송 남발로 이어지고, 나아가 기업 투자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형사상 배임죄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배임죄는 본질적으로 신뢰 침해행위이므로 원칙적으로 민사로 다루는 것이 맞다며, 그러나 정보 비대칭성과 기업 내부자료 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민사소송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배임죄는 민사적 절차를 중심으로 해결하고, 고의성과 중대성이 명확한 경우에만 형사책임을 제한적으로 부과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민사 중심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원고가 기업 내부정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처럼 정보 비대칭이 심한 구조에서는 실질적인 권리구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픽=채민선 기자> ©중기이코노미

◇소송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대표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디스커버리는 상대방이 보유한 정보를 강제로 제출하게 하거나 사전에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소송 절차로, 미국·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민사소송의 핵심 절차로 자리잡고 있다.

이 대표는 “재판의 실질적 진실 발견과 절차적 균형을 위해서는 디스커버리 도입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충분한 증거 교환 절차가 없으면, 한쪽 당사자만 알고 있는 정보로 인해 재판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며, “반대로 증거를 투명하게 공유하면 쟁점이 명확해져 신속하고 공정한 판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다수 피해자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하는 소비자 피해구제 소송이나, 주주가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하는 회사소송(주주대표소송 등)에서는 내부문서나 이메일 같은 증거 없이는 입증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강조했다.

국내외 담배회사의 내부 문건들이 디스커버리 절차로 공개돼 기업이 일찍부터 흡연의 위험성을 알면서 은폐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미국의 담배 소송사례처럼, 기업의 은폐 행위가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해 드러나는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영업비밀 침해소송이 미국에서 벌어진 이유도 디스커버리 절차를 통한 증거 확보 때문”이라며, “국내 법제도만으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어려워 기업들이 미국 법원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는 기술탈취, 의료사고, 금융소비자 피해 등 다양한 사안에 있어 피해자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확보 장치가 필요하다”며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소송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김남근·이강일 의원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은 28일 ‘이사의 충실의무 상법개정과 제도개선 과제’ 토론회를 개최했다. ©중기이코노미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를=이 대표는 디스커버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스커버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불법 행위에 대한 억지력과 피해회복 수단이 동시에 필요하다”며 “단순한 손해배상만으로는 고의적 은폐나 중대한 위반에 대한 제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은 보상액의 3~5배 수준으로 제한돼 있어 실효성에 대한 회의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미국 등처럼 고의성이나 반복성에 따라 손해액 이상의 제재가 가능해야, 디스커버리가 강력한 조사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 은폐나 자료 제출 거부에 실질적인 제재가 따르지 않는다면, 디스커버리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게 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은 단순히 피해보상 이상의 효과, 즉 위법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고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이 대표는 “검찰 출신들이 대기업 법무실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형사 기소 없이는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지금의 구조는 매우 기형적”이라며, “디스커버리 도입은 단순한 절차 개선을 넘어 검찰개혁, 사법개혁과 연결되는 본질적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 구제, 기업의 법적 안정성, 주주 보호를 위해 배임죄의 민사화와 증거 확보 절차의 제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올해 정기국회 전까지 입법 논의를 구체화해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