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패소한 삼성 불법합병 ‘ISDS’, 누가 책임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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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또 패소한 삼성 불법합병 ‘ISDS’, 누가 책임지나 시민 피해 회복하려면, 불법합병 관련자에게 구상권 행사해야

기사입력2025-03-31 17:00

김윤진 객원 기자 (jin@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

지난 3월 21일,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 사모펀드 메이슨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민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국제투자분쟁(이하 ISDS) 사건에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이 정부의 불복소송을 기각했다고 알렸다. 이로써 우리 정부는 3200만 달러(약 438억원)와 2015년 7월 17일부터 연 5% 복리로 계산된 지연이자를 국민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져온 시민의 입장에서는 그저 억울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미 예견된 패소…정부는 계속 외면 중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추진될 당시 이재용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지급했고, 그 대가로 박 전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이 합병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이루어지도록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했다는 것은 이미 대법원에서 인정된 사실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관련 수사와 재판은 현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실례로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됐고, 박 전 대통령과 이 회장이 뇌물죄로 실형을 받는 모습을 전 국민은 물론 전 세계가 지켜보았다. 엘리엇과 메이슨이 제기한 ISDS에서 국제중재판정부가 정부의 배상 판정을 내린 것도 한국 대법원의 판단을 근거로 들었다.

엘리엇과 메이슨의 ISDS 판정 이후 많은 전문가들이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우려했음에도 정부는 불복소송을 강행했고, 예상대로 패소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 9월 13일 엘리엇 ISDS 불복소송이 각하되자 또 다시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번 메이슨 ISDS 불복소송이 패소한 것에 대해 법무부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 대응하겠다고 한다. 만약 정부가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승산 없는 불복절차를 계속한다면, 긍정적 결말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상식에 어긋나는 삼성 불법합병 무죄판결

앞서 말했듯이, 이번 ISDS 판결은 2015년 박 전 대통령과 이 회장의 정경유착 및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이 있다. 그 여파는 아직까지도 지속돼, 삼성 불법합병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미 뇌물죄 및 뇌물과 합병의 관련성이 대법원에서 드러났고, 합병 비율의 부당함과 분식회계의 존재도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에서 인정됐다.

그런데 오직 삼성 불법합병 사건 재판에서만 1심과 2심에서 무죄가 나오며 모든 혐의가 부정되고 있다. 합병 비율이 부당하게 설정되지도 않았고, 회계정보 작성도 부적절했으나 죄는 아니라고 한다. 이는 시민들의 일반적인 법상식과 국제중재판정부는 물론, 앞선 다른 법원들의 판결까지 부정하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판단이다. 납득할 수 없는 논리로 재벌총수에게 면죄부를 주는 법원을 보고 있으면 사법질서라는 말의 무용함과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반드시 이를 바로잡아 상식과 정의가 다시 세워져야 할 것이다.

정말 “국익”을 위한다면 구상권 행사해야

이번 메이슨 ISDS 배상금과 앞서 엘리엇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ISDS 배상금까지 합하면, 약 23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세금이 유출되는 상황이 코앞에 다가왔다. 지연이자까지 고려하면 하루하루 국민 부담만 커져 가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국민연금공단도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서 엘리엇과 메이슨보다 더 큰 손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국민연금공단은 작년 9월 합병 책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벌총수의 그룹 승계를 위한 불법합병으로 인해 시민들은 세금과 연금에 모두 손해를 입었지만, 정작 이를 주도한 책임자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재벌이 불법행위로 사적 이익을 얻는 동안, 그 모든 피해를 시민들이 떠안고 있는 상황을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정말로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대응하겠다면, 이 회장을 비롯한 불법합병 관련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면 된다. 정부가 승산 없는 불복소송에 매달리는 동안, 연복리 지연이자는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무 잘못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세금과 국민연금을 납부한 시민들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정부는 조속히 불법합병 관련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세금과 연금 피해를 입은 당사자 시민으로서 정부의 마땅한 역할을 기대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윤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활동가)